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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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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티아 고고학박물관 입구.

박물관에 전시된 칼.

말라티아 고고학박물관은 인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지금 터키가 자리 잡고 있는 땅, 아나톨리아는 굴러다니는 돌 하나까지 문화재급이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별로 크지는 않지만 아슬란테페 유적 등 다양한 유물들과 만날 수 있다. 아슬란테페 유적? 이름 자체가 낯설 테니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히타이트 제국 등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명멸한 문명들이 남긴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이라고 해두자. 낯선 단어만 나오다 유프라테스 강 하니까 귀가 번쩍 뜨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들어본 단어 아니던가. 물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난 유프라테스 강이 터키 땅에 있어? 에이, 금시초문인데. 이렇게 되면 또 막막해진다. 인류 역사를 설명하는 게 왜 이렇게 복잡하단 말이냐. 그나마 조금 덜 낯선 히타이트 문명부터 풀어가자. 이름이 낯선 사람도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들어 사용하던 제국이라고 하면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히타이트 제국은 BC 18세기경에 아나톨리아 북중부, 하투샤를 중심으로 형성된 왕국이다. 당시 유럽은 청동기 문명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철로 만든 무기를 휘두르는 자들이 나타났으니 양들 한가운데에 늑대를 풀어놓은 격이었을 것이다. 파죽지세의 히타이트 제국은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시리아 북서부, 남쪽으로는 지금의 레바논까지,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장악했다. 그때 인류의 가장 오래된 평화 조약인 카데시 조약이 체결되기도 했다.

 

항아라등 도자기류.

고대 쐐기문자.

히타이트와 이집트는 카데시라는 벌판에서 전쟁을 벌였다. 소설 람세스로 유명한 람세스 2세가 이끄는 이집트 군대 역시 용감무쌍했지만 무른 청동칼로 단단한 쇠칼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때 전쟁을 끝내면서 맺은 평화조약이 카데시 조약이다. 히타이트는 철 생산기술을 절대 다른 나라에 알려주지 않았다. 돈을 가져와 사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값이 금값의 5, 은값의 40배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렇다면 철을 기반으로 지중해가 마르고 아라랏산이 닳도록 번영을 누려야 했을 그 거대한 제국이 어떻게 갑자기 사라졌을까. 답은 예상 외로 좀 싱겁다. BC 1180년 이후 사라진 건 분명한데 뚜렷한 이유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바다의 민족(그리스계 도리아인으로 추정)에 의해 멸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갑자기 그런 종족이 하늘서 떨어진 걸까? 엄청난 화재를 겪었다는 설도 있다. 또 전염병에 의한 멸망설도 있다.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전쟁을 할 때 히타이트에 사로잡힌 이집트 포로들은 천연두에 감염돼 있었다고 한다. 결국 군인들은 물론 히타이트 왕과 그의 후계자까지 천연두에 전염되면서, 급격히 쇠퇴하여 멸망했다는 설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생물학전의 원조가 아닐까. 아무튼 아무리 강한 자도 영원할 수 없다는 교훈은 분명히 남겼다. 주먹 세다고 너무 큰 소리 칠 건 없다. 히타이트 얘기는 이쯤 하자. 남의 땅의 문명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한반도에 찍힌 공룡발자국만 하랴. 지금 나는 히타이트 제국이 융성했던 땅에 서 있고, 내가 들어서는 이 박물관에 그들의 유물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설명이 좀 길어졌다.

 

화살촉 등 석기.

각종 장신구.

아기 옹관. 어린 아이의 뼈가 보인다.

박물관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다. 하지만 전시물들의 이력은 만만치 않다. 유물 중에는 BC 6000년경에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옛날 얘기를 많이 듣다 보니 면역이 돼서 BC 6000년이라고 해도 고개를 끄떡 끄덕 하지만 따지고 보면 놀랄만한 것들이다. 단순하게 비교해보자. 우리는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BC 2333년으로 본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의 유물들이 환웅이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뒤 웅녀를 만나 단군을 낳은 것보다 무려 3,600년 전쯤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단군이 남긴 유물들이 있던가? 각설하고 고고학의 문외한인 내 눈에는 별로 특별해 보이는 게 없다. 돌화살 같은 석기시대 유물과 그 뒤에 만들어졌을 각종 토기, 그리고 히타이트 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칼들이 눈에 띈다. 아슬란테페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폭풍의 신이 뱀과 벌이는 전투, 문의 사자, 타르훈자 왕의 조상, 생명의 나무, 풍요의 여신 쿠바바, 사슴사냥 등의 이름이 붙은 유물들이다. 이름들은 멋지지만 뭐가 뭔지 알 방법이 없다. 1986년 유프라테스 강에 댐을 만들면서 수몰된 유물도 많다고 한다. 역시 삽질은 반문명적이라니까. 밖으로 나오니 거리의 온도계가 34도에서 36도를 오르내린다. 서울보다는 높지만 이 정도야 뭐. 점심을 먹을 곳은 말라티아 전통가옥. 도심의 시네마 거리에 있는 이 가옥들은 1900년대에 지어진 2층집들이다. 2008년에 복원했는데 박물관, 예술의 집, 전통음식 음식점 등으로 쓰이고 있다.

 

1900년대 지어진 전통가옥.

우리로 보면 삼청각 쯤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음식 자체가 특별한 건 아니다. 역시 빵과 케밥이 주류. 하지만 역시 고급음식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입맛이 썩 당기지는 않는다. 내가 왜 이러지? 어디를 가도 없어서 못 먹는 내가 이번 여행엔 자꾸 입맛 타령을 하게 된다. 몸이 안 좋은 건가. 음식을 앞에 놓고 깨작깨작 속투정을 하다 보니 어제 이젯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이젠 제법 친해져서 농담까지 스스럼없이 할 정도가 됐다.

일본 사람들 재미없어요. 심각해서 농담하기 어려워요. 그런데 한국 사람은 정말 재미있어요.”

정말? 혹시 일본 사람 만나면 한국 사람 재수 없다고 그러는 거 아냐?”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한국 사람이 훨씬 재미있어요. 한국 음식도 훨씬 맛있어요.”

그래? 내가 좀 재미있기는 하지. 그런데 한국에 갔을 때 뭐가 가장 맛있었어?”

김치찌개요. 그리고 라면.”

에이 참. 그게 뭐니? 입이 왜 그렇게 싸구려야?”

그런 대화를 나눴다. 헌데, 그런 말을 한 게 후회된다. 김치찌개와 라면이 싸구려라니. 그 맛있는 음식이? ,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 먹고 싶다. 고급음식 앞에서 김치찌개 타령을 하고 있자니 내 자신이 한심해 보인다. 나도 배부른 여행자가 다 된 게야. 그러다 벌 받을 텐데.

 

점식식사로 나온 빵과 샐러드.

괜히 말 시켰나봐. 이젯의 김치찌개에 대한 열망은 집요했다.

그런데,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안 넣었으면 좋겠어요.”

? ? 김치찌개하고 돼지고기가 궁합이 얼마나 잘 맞는데 그래. 그거 없으면 고무줄 없는 거시기지.”

말을 하다 보니 아차 싶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실수를 한 셈이었다. 절에 가서 스님에게 왜 맛있는 새우젓을 안 드세요하면 기분 좋겠는가. 무슬림들은 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걸까.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누가 농담 삼아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슬람국가에서 왜 돼지고기를 안 먹는 줄 아세요? 옛날에 어느 힘 있는 사람이 먹어보니까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만 먹으려고.”

, 그건 종교를 모독하는 발언이지. 혹시 먹는 것에서 초탈하라는 교훈 때문이면 몰라도.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금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가만히 따져보면 근거가 분명하다. 역사 공부를 하느라 머리도 아플 테니 잠시 그 얘기를 풀어놓고 가자. 우선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꾸란)을 읽어보면 돼지고기에 대해 분명히 언급해놓았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먹지 말라고 써놓은 것이다.

 

믿는 자들이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취하고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만을 숭배하라. 죽은 고기와 피와 돼지고기를 먹지 마라. 그러나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는 죄악이 아니다. 하느님은 진실로 관용과 자비로 충만한 분이니라. (코란 2172~173)

 

 

말라티아의 일반 가옥.

 

말라티아 거리 풍경.

코란의 저런 말씀은 왜 나온 걸까. 일반적으로 돼지고기에는 여러 가지 병원균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해롭다, 돼지의 품성이 게을러서 가까이 할 게 못된다, 고기가 부패하기 쉽기 때문에 사막의 기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고들 말 한다. 그것 말고도 돼지고기가 이슬람에서 환영 받지 못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막이나 평원에서는 이동 거리가 넓기 때문에 육포를 만들어서 갖고 다니며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한다. 헌데, 돼지고기는 그 조건에 완전 미달이다. 지방질이 많기 때문에 자연 상태에서는 건조되는 대신 부패되기 쉽다. 지금이라면 통조림이라도 만들었겠지만. 다른 동물과 달리 젖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도 선택받지 못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먹기만 하고 나눠주지를 않다니, 고연 것. 뭐 이렇게 미움을 받지 않았을까. 또 잡식성인 돼지야말로 풀만으로는 키울 수 없다.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곡식을 나눠주다니. 안 키우고 말지. 사막이든 산악지대든 초식동물의 배설물은 대부분 말려서 연료로 쓴다. 헌데 아무거나 먹어대는 이 돼지란 녀석의 배설물은 석 달 열흘을 말려도 냄새만 날뿐이다. 남 흉볼 것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것뿐인가. 다른 곳에도 쓸모가 별로 없다. 등에 짐을 나를 수 있나? 타고 적과 싸우러 전쟁터에 나갈 수 있나? 털로 실을 만들 수 있나? 그런 돼지고기가 한국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으니, 이슬람 전파에 애로사항이 많을 것 같다.

 

간이 점포에서 옥수수 등을 팔고 있다.

지나가던 훌리아가 자신이 빠지면 큰 일 날세라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물론 음식 얘기는 끝난 지 오래였다.

터키 여자들이 가장 즐겨 입는 옷이 무슨 색깔인 줄 아세요?”

글쎄, 나는 뭐 여자들을 유심히 안 보는 점잖은 사람이라.”

킥킥!(뻥 치시네) 빨간 색 옷을 많이 입어요.”

?”

터키 국기가 빨간색이니까요.”

이거 진담이야? 사실이라면 대단한 애국심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가 이념싸움에 볼모로 잡혔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훌리아가 빨간 옷을 입었네? 진즉에 예쁘다고 해줄 걸. 그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터키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어딘 줄 아세요?”

으음~ 글쎄? 한국?”

물론 한국도 좋아하지만 미국을 가장 가깝게 생각해요. 경제적으로 가까운 곳은 유럽이지만.”

그럼,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어딘데?”

그리스요.”

터키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그리스 사람은 터키 사람을 죽도록 싫어한다. 원래 이웃이란 건 그렇게 가깝고도 먼 것인가? 잠시 일본이라는 나라가 떠올랐다.

 

거리의 작은 가게.

그리스 하면 대개 발칸반도 남단의 반도 국가를 떠올린다. 틀린 건 아니지만 거기서 끝나면 반만 알고 있는 셈이다. 그리스는 국가 이전에 문화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정석이다.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둔 그리스 문화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의해 헬레니즘 문화로 발전했고, 그리스도교와 함께 서양문화의 양대 축을 형성했다. 또 하나, 그리스는 국가라는 틀 이전에 그리스인이라는 개념이 먼저다. 그들이 문화를 꽃피운 곳, 즉 그리스화가 가장 잘 이뤄진 곳이 바로 지금 터키가 차지한 아나톨리아 반도다. 숱한 사람이 오가고 숱한 국가가 명멸했지만 그리스인들은 오랜 시간 이 땅에서 살아왔다.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하면서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의 새 주인은 오스만이 되었다. 오늘 날 앙숙이 된 결정적 계기였다. 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제국의 백성은 그리스인들이었다. 이름이야 어떻든 그리스인들로 보면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오스만 체제하에서 간헐적으로 독립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리스라는 국가가 태어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8세기부터 불기시작한 자유주의·민족주의 운동이 그리스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1829325일 정식으로 독립 국가를 수립한다. , 지금의 그리스라는 나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악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패하면서 동네북이 된 터키는 왕년에 우습게 보던 그리스에게도 핍박을 당하는 처지가 된다.

 

거리의 온도계. 현재 온도 34도.

그리스는 비잔티움 제국의 고토를 수복하고, 소아시아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919년 아나톨리아의 이즈미르를 공격한다. 1920년에는 아나톨리아 서부 대부분을 차지했다가 후퇴하면서 도시들에 불을 질러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1921년에 또 다시 침공했지만 무스타파 케말에게 패퇴한다. 더 큰 미움의 씨앗은 1923년 체결된 로잔조약이었다. 세계 1차대전 패전국 터키와 연합국간에 체결된 이 조약에서 터키는 이스탄불을 지키는 대신 에게해의 섬들을 그리스에게 내주고 만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또 이 조약에 의해 자국 국민이 교환되면서 오스만 제국에 살던 130만 명의 그리스인이 터키를 떠났고 그리스 땅에 살던 40만 명이 터키로 돌아갔다. 터키인들은 지금도 바다만 바라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코앞의 섬들이 전부 그리스 영토니 볼 때마다 혈압이 오를 수밖에. 증오가 얼마나 큰지 터키에서는 TV에 그리스인이 나타나기만 해도 토마토를 던지며 괴성을 지른다고 한다. TV 깨질까봐 차마 돌은 안 던지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견원지간이란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은 얼마나 '다정한' 이웃인지. 끝으로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만 더. 우리나라 사람들, 그중 세계 역사 좀 안다는 사람에게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가 태어난 곳은 어디지요?’라고 물으면 터키라는 대답이 나오기도 한다.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의 혼동 때문이다. , 우리처럼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땅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헤로도투스든 사도 바울이든 소아시아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터키 땅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터키 사람은 아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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