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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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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26 [Healing Travel 나를 치유하는 여행 3] 주산지10
2012. 11. 26. 08:40 나를 치유하는 여행

*10월 첫 주에 다녀온 여행입니다. 계절적 차이 양해 부탁드립니다.

 

김기덕이 섰던 자리

 

새벽, 누군가 서성거리는 것 같아 후다닥 창문을 엽니다. 하지만 창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건, 새 계절을 마중하느라 분주한 나무들과 미명 속을 몰려다니는 안개가 전부입니다. 안개는 대보름 밤의 들개 떼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립니다. 그들이 문을 두드려 살얼음처럼 얇은 잠을 들춰낸 모양입니다. 옅은 어둠과 안개가 얽혀있는 풍경은 백룡과 흑룡이 뒤엉켜 싸웠다는 신화적 무게를 은닉하고 있습니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섭니다. 낯선 곳에서 마주치는 안개는 가끔 사람을 홀리기도 합니다. 얼른 차에 올라 시동을 겁니다. 밤새 추위에 떤 낡은 차는 두어 번 쿨럭거리다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립니다. 오늘은 새벽안개를 포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짙은 안개 속을 천천히 달리다 보니 눈앞의 풍경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겹쳐집니다. 남한강이었을 겁니다. 지금보다 조금 늦은 초겨울이었던 것 같고요. 세상은 물론, 잠과의 불화가 극에 달할 만큼 심신이 피폐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날도 밤새 뒤척거리다가 끝내 몸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헌데, 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는 순간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그 장엄한 광경이란. 강가는 안개 군단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습니다. 장수들은 호령을 하고 군사들은 기치창검 정연하게 진군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장한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놓았습니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저는 병사들을 헤치고 더듬거리며 강가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엔 안개군단의 사령부가 있었습니다. 강은 훈련된 보충병들을 쉬지 않고 배출했습니다. 아예 세상을 점령할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안개는 제가 머물던 숙소도 강가의 키 큰 미루나무도 삼켜 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나를 만난 건 그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사물이 사라진 공간, 그곳에 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안개가 데려다준 본질의 였습니다. 그 순간, 세상의 시간은 온전히 저 하나만을 위해 열려 있었습니다. 눈앞에 있는 사내, 즉 객관화된 를 찬찬히 들여다봤습니다. 작은 난관 앞에서도 쉽게 절망하는 사내, 자주 남을 탓하는 사내, 세상은커녕 사람 하나 안아주지 못하는 사내. 하지만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치이고 다치고 아파도 늘 웃어야 하는 사내.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오래 전 울음을 잃어버렸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절실한 건 화해였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그 누구의 사랑도 받을 수도 없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가 저를 끌어안았습니다. 길고 긴 미로에서 길을 찾은 그 새벽은 안개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시간 안개 속을 달리는 건 저 혼자뿐입니다. 당신도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는 단어를 실감해본 적 있나요? 지금 이 길이 딱 그렇습니다. 얼마나 돌고 도는지, 얼마나 오르내리는지, 핸들을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갑니다. 지금 가는 길은 비교적 얌전한 편인데도 그렇습니다. 청송이란 곳이 그렇습니다. 청송을 말 그대로 풀면 푸른() ()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지명중에 가장 멋진 이름입니다. 이 고장 사람들은 동쪽에 있는 불로장생의 신선세계란 뜻에서 지명이 유래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선계(仙界)를 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그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땅인 것은 확실합니다. 숲은 울창하고 골은 깊으며 물은 달고 맑습니다. 오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바람 한 자락까지 청정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길을 달려 저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주산지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주차를 한 뒤 언덕길을 한참 오르고 나서야 작은 호수가 보입니다.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음을 재촉합니다. 해 뜨기 전에 사진 몇 장을 찍어두려는 요량에서입니다. 이곳에 당신이 함께 왔다면 약간 실망스럽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조금 미적거리다 고개를 끄떡거리겠지요. 호수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작고, 저수지라고 부르기에는 인정머리 없어 보이고, 못이라고 하기에는 깔본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바로 이 주산지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어쩐 일인지 꽁지 빠진 장닭마냥 추레한 얼굴이군요. 물이 많이 빠진데다 그 씩씩하던 왕버들이 지쳐 보이기 때문일까요? 앞서 걷던 여자가 여지없이 의문을 드러냅니다.

애개개! 여기가 거기 맞아? 영화하고는 영 다르잖아. 이렇게 조그맣지 않았는데?”

함께 가던 남자가 모든 걸 모든 것 이해한다는 듯 대답합니다.

그게 바로 영화 만드는 기술이야.”

그들이 말하는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입니다.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입니다. 오늘의 물안개는 기대만큼 짙지 않습니다. 약간 실망스럽지만 포기하기는 이릅니다. 미농지처럼 엷은 햇살이 먼 숲 사이로 비껴들면서 안개가 수면 위를 유영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 눈에 실망스러울지라도 제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1721년에 축조된 길이 200m, 너비 100m의 작은 호수,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바닥이 드러난 적이 없다는 이곳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주인공 중 하나로 등장했던 왕버들 근처에 삼각대를 세웁니다. 지금은 삐걱거리는 문도, 물 위에 뜬 절도, 떠나거나 돌아올 사람도 없습니다. 한 때 스물 세 그루나 됐다는 왕버들은 한살이를 마치고 고목이 됐거나 수세(樹勢)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아직 저만치에서 주춤거리고 있어서 주산지의 자랑거리인 단풍은 보기 어렵습니다. 1~2주 더 지나야 물안개도 살을 붙이고 나뭇잎도 물이 들 것 같습니다. ‘감독 김기덕의 눈으로 작은 호수를 바라보며 일면식도 없는 그를 생각합니다. 그와 나의 유일한 접점이 있다면 영화겠지요. 그는 만들고나는 보는사람이지만. 저는 영화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예술가의 심리를 분석하는 일이라면 손방이라는 단어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김기덕의 영화를 볼 때마다 그의 심리를 궁금해 합니다. 그를 말할 때 곧잘 콤플렉스라는 단어가 동반되고는 합니다. 그러면서 그 언저리에 초등학교 학력(1년쯤 다녔다는 이름 없는 신학교까지도 생략하고 싶어 합니다.)이나 성장과정을 배치합니다. 저는 그의 콤플렉스가 과연 그런 환경이 만들어낸 건지 궁금합니다. 아니, 정말 그가 콤플렉스 덩어리인지 의심합니다.

 

<파란 대문> 등의 작업을 함께했던 촬영감독 서정민은 김기덕을 일러 신인 감독이었지만 두려움이 없고 대담했다.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밀고 나가는 뚝심이 대단하다.”고 했다지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어쩌면 김기덕에게 콤플렉스는 존재했되 콤플렉스 따위에 시달린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궤적을 살짝 엿보며 혼자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파리로 건너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닭을 먹으며 버텼다는 강단, 듣도 보도 못한 화가가 되어 유랑 전시까지 했다는 두꺼운 낯, 귀국 후 느닷없이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나섰다가 결국 한 가락 하는 영화감독이 되는 그를, 콤플렉스 덩어리로 규정짓기에는 조금 석연찮습니다. 하긴 그런 뚝심 역시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저돌성일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콤플렉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요. 콤플렉스가 그의 독특한 세계를 일궜다면, 그건 약점이 아니라 삶을 키우는 자양분이었을 테니까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작용한 콤플렉스는 더 이상 콤플렉스라고 부르면 안되겠지요. 사실 제가 결론 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김기덕이 업보라는 돌을 지고 산을 기어올랐듯, 콤플렉스의 무게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오래 천착해보는 것뿐입니다. '콤플렉스야말로 그대를 키우는 에너지입니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놔두는 것도 지혜겠지요. 생각을 접은 뒤 부지런히 셔터를 누릅니다. 가을을 맞으러 새벽을 달려온 사람들이 분주히 오갑니다. 저는 당신에게 이곳 풍경을 전해줄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소로 돌아오는 길, 어느 과수원 길거리 판매대 옆에 차를 세웁니다. 사과 향에 취해 실컷 행복을 누려놓고 맨손으로 가기에는 염치가 없습니다. 제가 오늘의 첫 손님인 모양입니다. 아주머니가 사과 하나를 앞치마에 쓱쓱 문지르더니 불쑥 내밉니다. 보통은 칼로 깎아서 한 조각 권하기 마련인데, 이렇게 건네주니 무람없고 좋습니다. 망설임 없이 덥석 베어 뭅니다. 와삭!! 하는 소리가 대기를 관통하는 순간, 날카로운 희열이 온몸을 감쌉니다. 나뭇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활연대오(豁然大悟)했다는 고승의 경지는 분명 아닌데, 느닷없이 찾아온 이 환희는 무엇일까요. 제 안의 근심과 오욕이 사과를 베어 무는 소리에 놀라 몽땅 도망친 모양입니다. 생각을 탈탈 털어내고 사과에 탐닉합니다. 김기덕이 여전히 파열을 꿈꿔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를 100개쯤 만들고, 10년 내리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독식한다고 제게 뭐 그리 대단한 의미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만은 와삭, 하는 경쾌음과 입안에 고이는 달콤한 맛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요.

 

그러고 보니 과수원집 아주머니는 제 외숙모를 닮았습니다. 잘 마른 삭정이처럼 기름기 없는 얼굴에서 오래 전에 돌아가신 그분을 봅니다. 그런 끌림이 있어 이곳에 차를 세우게 된 걸까요. 외삼촌댁에는 사과나무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외숙모는 제가 가면 갈무리해뒀던 사과를 앞치마에 정성스럽게 닦아 내밀었습니다. 그해에 딴 사과 중에 가장 실한 것이겠지요. 외숙모의 앞치마를 지나온 사과는 마당가의 샐비어꽃처럼 붉었고 갓 벌어진 석류알처럼 반짝거렸습니다. 전문 과수원이 아닌지라 작고 볼품없었지만 제 기억 속의 어떤 사과보다 예쁘고 맛있었습니다. 외숙모는 사과를 능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참동안 사과와 능금을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훗날 생각해 보면 외숙모가 준 사과는 능금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습니다. 깨어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날들 위를 걸어왔지만, 그 흔한 사랑이 나만 외면한다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랑은 늘 제 주변에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주 잊었습니다. 뺨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 부드럽게 안아주던 햇살 한 자락도 누군가의 사랑이라는 것을. 오래 열어보지 않았던 기억의 주머니, 그 안쪽 아디엔가 헌책처럼 던져두었던 사랑들을 꺼내 사과 무더기 옆에 차곡차곡 쌓아놓습니다. 이렇게 많은 돌봄 속에 살았구나, 나는.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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