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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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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에 해당되는 글 1

  1. 2010.04.05 [사라져가는 것들 135] 고무줄10
2010. 4. 5. 09:04 사라져가는 것들
가객 장사익은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고 노래했지만 저는 옛 정취가 그리워서 시골장을 기웃거립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와 똑같은 체취를 가진 노인들 틈에 섞여 이리저리 흘러 다니다보면, 거북등처럼 갈라졌던 마음도 어느덧 말끔하게 때워지고는 합니다.
아직도 시골장터에는, 도시를 떠돈 뒤로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이 어항속의 금붕어처럼 유영합니다.
예고 없이 마주치는 추억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지요.
그들 중 하나가 고무줄이라고 하면,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네.” 하고 웃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제겐, 아니 저와 비슷한 시절을 사신 분들에게는 그리 싱거울 일 만은 아닙니다.
지금은 세월에 묻혀 잊혀져가는 존재가 되었지만, 과거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골장 한 모퉁이 잡화코너에 조금 부끄러운 듯 걸려있는 고무줄을 마주치면 금세 머릿속에 주마등이 하나 걸립니다.
코흘리개 아이 때처럼 신명이 전신을 훑기도 하고, 오래 전에 이별한 할머니 생각에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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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장에 갈 때면, 어머니는 고무줄을 잊지 마시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고는 했습니다.
그만큼 아녀자들에게 중요한 게 고무줄이었거든요.
아래속옷을 ‘빤스’도 아닌 ‘사리마다’ 쯤으로 부르던 때였으니, 어쩌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돼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사리마다’에는 고무줄이 꼭 필요했습니다.
요즘이야 밴드 처리가 잘 돼 적절한 탄력을 주는 제품이 쏟아지지만, 전에는 고무줄을 넣어야 흘러내리지 않았거든요.
속옷의 윗부분, 지금으로 보면 밴드 처리된 부분에 고무줄이 들어갈 만큼 틈을 만들고, 그 안에 고무줄을 넣습니다.
옷핀이나 가는 머리핀에 고무줄을 매달아 틈새에 넣고 반대쪽까지 조금씩 밀고나간 뒤 양쪽 끝이 만나면 묶어줍니다.
여기엔 조금 값이 헐한 까만 고무줄이 주로 쓰입니다.
지금도 침침한 등잔불 아래서 속옷에 고무줄을 넣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고무줄을 한번 넣었다고 끝까지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속옷 한 장을 만들면 낡아 떨어질 때까지 입던 시절이니, 고무줄이 삭아 끊어지는 일도 흔했지요.
새로 짱짱하게 고무줄을 넣은 속옷을 입고 나서면,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허리에 힘을 주며 으쓱거리기도 했습니다.
엉덩이는 헤져서 몇 번씩 기운 걸 입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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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이 꼭 필요한 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기저귀입니다.
요즘은 대부분 펄프로 만든 일회용 기저귀를 쓰니 천기저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출산을 앞둔 집은 맨 먼저 천기저귀를 준비했습니다.
아기의 여린 피부를 감안해서 소재는 부드러운 면을 쓰지요.
이때 필요한 것이 노란 고무줄입니다.
노란 고무줄은, 까만 고무줄이나 납작한 찰고무줄과는 달리 가운데가 빈 원통형의 고무줄입니다.
다른 것보다 값도 좀 비싸고 탄력도 좋지요.
기저귀를 댄 위에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너무 탱탱하면 아기가 불편하고 너무 느슨하면 흘러내리기 때문에 잘 조정해줘야 합니다.

사실, 고무줄은 아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놀이도구였습니다.
남자애들은 고무줄이 있어야 새총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까만 고무줄은 새총에는 잘 쓰지 않았습니다.
찰고무줄이나 기저귀 고무줄에 비해서 탄력이나 내구성이 형편없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어린 동생의 기저귀 고무줄에 눈독을 들이는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고무줄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양쪽으로 균형 있게 벌어진 나뭇가지를 자른 뒤, 깎고 다듬어 거기에 고무줄을 묶고 가죽을 대어 새총 하나를 완성하면 세상 모든 새가 내 손 안에 있는 듯 뿌듯했지요.
하지만 새총이 있다고 새가 절로 잡히나요?
가죽에 작은 돌이나 콩을 먹여 참새 떼를 향해 연신 쏘아보지만, 약 올리듯 포롱포롱 날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참새 중에도 눈치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녀석들이 있어 맞아주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땐 최소 3박4일 자랑거리가 되었지요.
조금 큰 아이들은 나무를 깎아 장난감 권총을 만들기도 했는데, 격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탄력 좋은 고무줄이었습니다.
화약을 쓰도록 만든 이 총은 꽤 위력이 있어서 어른들은 ‘위험물건’으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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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에게 고무줄은 더욱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바로 고무줄놀이 때문이었는데, 이땐 까만 고무줄이 적격이었습니다.
고무줄 여러 개를 이은 긴 줄을 가진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엄마 ‘사리마다’에서 고무줄을 몰래 빼냈다가 종아리에 퍼런 줄 빨간 줄 그은  애들도 있었겠습니까.
아이들은 놀이를 한번 시작하면 해가 저무는 줄도 몰랐습니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 해만이냐…‘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느티나무집 너른 마당에서 부르는 노래 소리가, 탱자나무 울타리를 넘어 귓전을 간질이던 시절의 필름은 언제 돌려봐도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잘 하는 아이들은 고무줄이 머리 위, 아니 팔을 최대한 뻗을 만큼 높아져도 펄펄 날면서 넘고는 했지요.
개구쟁이 사내 녀석들은 연필 깎는 칼을 갖고 다니다가 몰래 다가가서 고무줄을 끊어놓기도 했습니다.
심술보다는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랬다고들 하는데, 어디 그 심중을 확인할 방도야 있나요.
그 덕분에 오래된 고무줄은 잇고 이어서 철조망 가시 같은 매듭이 수십 개 씩 되곤 했습니다.
지금처럼 리본이 흔하지 않던 시절,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묶는 데도 고무줄은 꼭 필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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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무줄 정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더 이상 고무줄이 필요한 놀이를 하지 않지요.
아직도 속바지 정도는 손으로 기워 입는 시골노인들에게는 여전히 소중한 존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찮은 물건이 되었는데도, 가끔 까맣고 노란 고무줄을 보러 시골장에 가고 싶으니 이걸 고질병이라고 하나봅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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