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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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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에 해당되는 글 1

  1. 2012.03.12 [터키, 지중해를 따라 걷다 22] 황혼에 물든 아폴론신전31

*1회부터 읽어야 재미있습니다.^^ 지명과 역사적 사실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시데 아폴론신전의 황혼.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에서 바라본 파란 하늘.


'낙타소녀'와의 즐거운 시간

고대도시 페르게를 벗어난 버스는 아스펜도스를 향해 달린다. 안탈리아에서 동쪽으로 47km 떨어진 곳, 사라진 도시 아스펜도스는 한 때 항구도시 시데와 상권을 놓고 우열을 겨뤘을 정도로 번영을 이뤘다. 물론 지금은 페르게와 마찬가지로 폐허에 가까운 조그만 마을일뿐이다. 원형극장 등의 유적이 남아 과거의 영화를 노래하지만, 그래서 더욱 쓸쓸한지도 모른다. 지중해의 상업중심지였던 아스펜도스는 이미 BC 5세기부터 은화를 만들어 쓸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 뒤 몸소스라는 인물이 도시를 세웠다는 신화가 있다. BC 6세기 초에는 리디아왕국에 점령됐고 BC 546년부터 페르시아에 편입됐다. 알렉산더 대왕이 소아시아를 정복한 BC 334년 이후에는 급격하게 그리스와 됐고 그 뒤 시리아와 이집트, 로마의 속주 사이를 오가지만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BC 67년 이후 로마가 실질적인 주인이 되면서 상업중심지로 활짝 꽃을 피웠지만 AD 3세기 이후 로마제국의 쇠퇴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 파괴되는 운명에 처한다. 헌데, 몰락을 해도 어쩌면 그리 지우개로 지우듯 사라질 수 있을까. 1392년 오스만 터키가 팜필리아를 접수했을 때는 조그만 마을만 하나 남아있더란다.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아스펜도스에 남아있는 원형극장. 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극장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어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낙타 일가족. 어미아비는 일하는데 새끼는 마냥 놀고 있더라.

나를 즐겁게 해줬던 바로 그 소녀.

원형극장 앞 주차장에 내려서 사방을 둘러보니, 왕년에 도시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들은 시침 뚝 떼고 들판이 되어 누워있다. 맨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극장 건물이 아니라 낙타 2마리(뒹굴 거리며 놀고 있는 새끼까지 합치면 3마리)와 조그마한 소녀다. 아이는 언뜻 보기엔 제법 성숙해 보이지만 초등학교 5~6학년 정도 됐을 것 같다.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일하는 아이들이 많은 거야. 소녀는 낙타를 태우고 사진을 찍어주는 걸 업으로 하는 아버지를 돕는 모양이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돕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장사(?)를 혼자 다한다. 관광객이 지나가면 밝은 미소와 톡톡 튀는 목소리로 불러서 낙타를 타라고 권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하회탈 같은 미소를 띤 채 구경만 하고 있다. 저런 딸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광경을 놓칠 수 없어서 사진을 몇 장 찍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나를 부른다. 사진을 찍어줄 테니 카메라 내놓고 낙타 앞에 서란다. 낙타를 탈 생각이 전혀 없다고 손을 홰홰 내저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뭘 걱정하지 말란 거지?)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기념사진 한 장 없어서야 쓰겠냐고 어깨라도 두드려줄 태세다.(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라 손짓 발짓이 그랬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사진 찍히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풍경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쯤 있는 거야 어떠랴 싶어 낙타 앞에 선다. 낙타는 아예 등에 태울 놈이 못 된다는 걸 알고는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한다.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으로 들어가는 길.

돌아온 글래디에이터.

아스펜도스 원형극장의 위용 


외모는 그럴듯 한데 목소리는 영 아니었다.

! 난 딱 거기까지만 행복했다. 카메라를 다시 받아드는데 아이의 얼굴에 숱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내가 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고생을 했는데 그냥 갈 거예요?” “모델을 서준(서준 것도 아니다. 그냥 앉아 있었다) 우리 낙타들의 사료 값은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세요?” 천일야화인들 이렇게 많은 사연을 담고 있을까. 물론 아이의 손은 내 쪽을 향해 내밀어 있다. 설령 심장에 철판을 깔았다고 해도 그냥 돌아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호주머니에서 1리라짜리 동전이 저절로 기어 나온다. 하지만 나도 맨입으로 갈 수는 없지. “이번엔 네가 낙타 앞에 서봐. 모델료 받았다고 생각하고좀 치사하지만 이만한 모델을 또 어디서 구할까. 사진을 몇 컷 찍고 돌아서 나오는데 먼 발치서 바라보던 K가 한마디 한다. “당했지요? 얼마 줬어요?” 아니, 당했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그러기에는 아이에게 완전히 반했다. 아이와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나는 비밀을 나눠가진 사람들처럼 환한 웃음을 베어 문 채 헤어진다. 그나저나 낙타를 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내는 걸까? 낙타소녀와 헤어져 극장 쪽으로 들어가는데 또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풍경을 만난다. 누군가가 느닷없이 시간을 거꾸로 돌리기라도 한 걸까? 로마의 글래디에이터 하나가 극장 입구 쪽에 서서 손짓을 하고 있다. 고전적 복장에 둔중해 보이는 칼, 그리고 고() 율 브리너를 연상하게 하는 까까머리와 세 갈래로 멋을 낸 수염. 한 눈에 봐도 싸움 좀 할 것 같은 글래디에이터다.

원형극장 무대쪽의 벽.

원형극장 맨 꼭대기의 회랑.

하지만 이 친구(친구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친해졌다)가 하는 일만큼은 그리 장엄하지 않다. 관광객에게 칼을 빌려주고 사진의 모델이 돼주는 게 그의 직업.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하도 여러 사람을 겪다보니 척 보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수준이 된 모양이다. 하나 둘 셋, 숫자도 셀 줄 안다고 자랑한다. 한국말은 딱 거기까지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각국의 말을 조금씩 공부한단다. 그래 참 장하다. 그런데 이 친구 특이한 게 하나 있다. 덩치와 외모는 근사한데 목소리는 완전 아이 목소리다. 신은 한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는 진리를 확인한다. 이제는 원형극장에 들어가 볼 차례. 대부분의 고대 원형극장이 훼손된 상태인데 이곳 원형극장만큼은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기대도 크다. 이 극장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명상록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년 재위)를 위해 만든 것으로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객석과 무대, 배우 대기실 등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돼 있다. 객석의 상단부는 그리스 전통 건축기법에 따라 언덕을 이용해 지어졌다. 객석은 상단 21, 하단 20열로 이뤄졌으며 맨 위층에는 회랑이 있다. 귀빈석은 아래쪽 객석 양 끝에 따로 마련돼 있는데, 그 이유는 무대 건물에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자리기 때문이란다. , ‘그들만의통로가 있었다는 얘기다. 예나 지금이나 뭘 좀 가졌다는 인간들은 장삼이사와 문을 같이 쓰는 것조차 싫었나 보다. 썩을 것들.

원형극장 전경.

지금도 재즈페스티벌 열려


이 극장 대단하긴 하다. 밖에서 봐도 엄청난 위용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우선 그 규모에 압도당한다. 무대의 벽은 이오니아 양식과 코린트 양식이 혼합된 기둥으로 장식돼 있다. 객석 쪽에는 58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곳에 기둥을 박고 천막을 쳐서 그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개폐식 지붕을 만들어 햇볕이나 비를 피했던 모양이다. 2000년 가까이 된 그 옛날에 장한 일이다. 객석에서 마주보이는 무대는 높이 25m, 길이 110m의 벽으로 이뤄져 있다. 이 벽 자체도 거대한 건축물이다. 무대에는 다섯 개의 문이 있는데 중앙 문으로는 연극 감독관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다시 작은 문들이 줄지어 있는데, 검투사와 맹수들이 싸우는 날에는 이 문들을 통해 맹수가 드나들었다. 따지고 보면 죽음의 세계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문들이었을 것이다. 그 피의 향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 운명적으로 피를 흘려야 하는 생명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무대에는 음향효과를 위해 나무 지붕이 드리워져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극장 역시 긴 세월을 버텨오면서 우여곡절과 시련이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교회로 개조된 적이 있었고 셀주크투르크 때에는 안탈리아에서 출발해서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대상 隊商)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당시 대상 숙소는 30km마다 하나씩 있었다. 13세기에는 술탄(알라딘 케이쿠바드 1)의 별장으로 쓰였다.

회랑의 창으로 본 원형극장

원형극장의 무대쪽.

터키공화국 건립 후인 1930년 아타튀르크가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복원 지시를 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도 여름 시즌엔 오페라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극장구조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마이크를 설치하지 않아도 객석 어디서든지 잘 들린다고 한다. 객석을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기다시피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맨 위에서는 무대 쪽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형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그때 누군가가 가운데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 이럴 수가. 저 아득한 곳에서 부르는 노랫소리가 똑똑하게 귀에 들어온다. 이 정도면 설계의 승리다. 땀을 식힌 뒤 계단을 내려오다가 페르게에서 만났던 한국인을 또 만났다. 이번엔 부인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꽁꽁 싸맨 채 어느 그늘엔가 숨어 있겠지. 하긴, 허기와 내려 쪼이는 햇볕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무슨 말라비틀어진 구경. 그러든 말든 남편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탐색한다. 나는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한 극장 밖의 언덕까지 다녀왔다고 자랑한다. 이제는 아스펜도스를 떠날 시간. 이 부부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좀 섭섭하다.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가야한다. 부디 행복한 여행이 되길. 부인도 터키음식에 정 들일 수 있기를. 정말 먹을 만 한데. 점심은 시데로 가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해결하기로 한다. 참 독특하게 생긴 휴게소다. 외관은 몽골식 파오(게르)처럼 생겼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과 기념품, 식료품 가게가 한곳에 모여 있다.

아스펜도스에서 시데로 가는 길에 점심을 먹었던 휴게소. 독특한 모습이다.

시데를 향해 떠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데로 가는 길, 버스는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달린다. 이 지역은 로마시대에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옥수수의 주산지였는데, 이곳의 경제력이 로마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시데는 안탈리아에서 7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팜필리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도시다. 안탈리아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팜필리아 최고의 항구도시였다고 한다. 페르게, 아스펜도스 등 팜필리아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역사의 풍랑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 도시다. 기원전에는 그리스의 일부였다가 이집트의 영토로 편입된 적도 있고 BC 67년에는 로마의 속령이 된다. 그 후 노예 매매와 올리브기름의 교역 중심지로 번성을 거듭해 한 때는 인구가 6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역시 7세기 이후 이슬람의 침략을 받으면서 급격하게 몰락한다. 10세기 들어 주민들이 안탈리아로 떠난 뒤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곳에 사람이 다시 들어와 살기 시작한 건 1895년부터였다고 한다. 크레타 섬에서 오스만터키에 항거하는 봉기가 일어나 그리스에 합병되면서 그곳에 살던 무슬림들이 시데로 이주한 것이다. 현재는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자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시데에 도착한 건 해가 조금씩 서쪽으로 기울어갈 무렵. 거리는 인파로 북적거린다. 시데는 남북 1km, 400m 정도에 세워진 작은 도시다.

양탄자를 짜는 여인.

시데의 거리.

식당과 기념품가게, 카페 등이 어우러진 쇼핑가를 걸어가다가 가게 앞에 앉아 카펫을 짜는 여인을 만난다. 카펫을 수리하는 건 봤어도 짜는 걸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얼핏 봐도 무척 꼼꼼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1m²를 짜는데 1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것도 쉬지 않고 하루에 아홉 시간씩 작업을 해서. 지금 걸어놓은 것도 10개월째 짜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 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짜다가 집어던지고 말 것 같다. 시데에는 남아 있는 유적이 꽤 많다. 대부분 번성기였던 로마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곳곳에 남아있는 성벽은 물론 소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원형극장, 복원을 거쳐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공중목욕탕, 노예가 거래됐다는 아고라,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분수대와 성문 등이 남아있다. 하지만 시데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싶어 하는 곳은 아폴론신전이다. 우리 일행도 다른 유적들은 주마간산으로 스쳐 지나고 최종 목적지를 아폴론신전으로 잡았다. 신전을 향해 가는 도중 곳곳에 굴러다니는 석조 유물의 잔해들을 만난다. 길거리 꽃밭에도 식당의 간판 앞에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저 예술의 정수들. 아깝다. 우리 같으면 박물관에 모셔질 것들일 텐데. 답답하게 늘어선 상점들을 지나면 어느 순간 앞이 탁 트이며 바다가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자 드디어 아폴론신전이 우뚝 서서 일행을 반긴다. 아아! 저것이. 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길거리 어디든 굴러다니는 고대 유적의 잔해들.

드디어 저만치 아폴론신전이 보인다. 그리고 무너진 신전의 잔해들.

신전 옆 폐허가 된 사원

아폴론신전을 만나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던 그 유명한 신전이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짙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는 기둥들. 신전은 보통 도시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짓기 마련인데 이곳은 바다를 보고 서 있다. 시데가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안전한 항해를 염원하는 뜻으로 세운 것이겠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신전 뒤쪽의 모래벌판에 항구가 있었다고 한다. 바람 부는 날에는 파도가 혀를 내밀어 신전 기둥을 핥기라도 할 것처럼 바다가 가까이 있다. 폐허 위에 다섯 개의 코린트식 기둥들이 조금 남은 구조물을 받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근처에는 무너져서 폐허처럼 변한 사원이 있고 바닷가 쪽으로는 신전의 일부였을 것으로 보이는 대리석 기둥과 돌덩이들이 그대로 누워 있다. 서 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서 있는 다섯 개의 기둥은 자태를 뽐내며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바닥에 누워 있는 것들은 그저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처럼 지중해의 가을 햇살에 몸이나 말리고 있을 뿐. 서 있는 다섯 개의 기둥도 폐허 속에서 골라내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기단을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침식에 의해 철근이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보기 흉하다. 현대인의 기술이 옛사람들의 발꿈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아폴론신전과 무너져 누운 기둥들.

아폴론신전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이곳은 석양 무렵의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도 석양 무렵에 이 신전을 찾아와서 황홀경에 푹 빠졌다나 어쨌다나. 그렇다면 나도 그냥 말 수 있나. 예까지 왔는데 석양에 물든 신전 한번 보고가야지. 시간을 보니 해가 지려면 아직 한 두 시간 남았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다가 잠시 쉴 겸 카페를 찾아든다. 지중해의 다른 도시라고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곳 시데야말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찾아든 카페의 간판은 ‘APOLLO CAFE BAR’ 아주 당당한 이름이다. 카페에 앉아 음료수를 시켜놓고 시간을 조금씩 접는다. 잠시도 쉴 틈 없이 돌아다니다가 하는 일 없이 앉아있자니 그도 나름 고역이다. 여행을 하는 중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내 스스로 그렇게 떠들건만. 짙푸른 바다에는 유람선이 포말을 토하고 해변에는 낚시꾼의 고독이 정물화로 굳었다. 바닷가에 굴러다니는 돌도 최소한 문양 한 둘쯤은 새겨져 있다. 언젠가는 세월의 흔적조차 지워진 평범한 돌로 돌아가겠지.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며 가만 생각해보니 내 여행이야말로 저물어가고 있다. 두꺼운 수첩 한 권이 마지막 페이지를 드러냈고 카메라 메모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볼펜도 두어 개가 수명을 다했다. 신발도 제법 닳았겠지. 대신 내게는 누구에겐가 전해줄 이야기가 오롯이 남았다.

해가 짐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폴론신전.

마지막 정염을 불태우던 태양이 빠른 속도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서둘러 다시 신전으로 간다.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드는 것에 맞춰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기 시작한다. 저들도 이 시간을 즐기기 위해 어디선가 기다렸겠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신전 앞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앉는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하다. 바다는 해를 날름 삼키고 대신 붉은 노을을 토해놓는다. 여기저기서 신음과 구별하기 어려운 감탄사가 터진다. 그래, 아무리 철판을 깔았다고 해도 이런 때까지 신음소리를 아끼는 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겠지. 내 앞에 선 부부가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저들은 지금 무엇을 기원하고 있을까. 젊은 여인들은 감동에 겨워 포옹을 하고 아이들은 실루엣을 남기며 기둥 사이를 뛰어다닌다. 밀려온 어둠이 붉은 하늘을 조금씩 지우기 시작하자 신전에 조명이 들어온다. , 이건 또 다른 모습이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기둥의 조각들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코린트양식 특유의 문양들이 꽃처럼 피어난다. 발길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또 떠나야한다. 나그네의 운명이 그런 것을. 저만치 바다에서 떠오르던 초승달이 슬그머니 웃으며 이방인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추천(view on)과 댓글 감사합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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