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굿'에 해당되는 글 1

  1. 2007.10.10 [사라져가는 것들 29] 굿2
2007. 10. 10. 20:13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무렵이라는 건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데, 국민학교 4학년이었는지 5학년이었는지는 간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마냥 분명치 않다. 짝을 잃어 못쓰게 된 장난감 퍼즐처럼, 순서를 짜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아주 드물게, 기억을 살려 완성된 그림을 그려보려 하지만 터무니없이 왜곡된 조합만이 나타나고는 한다. 그러나 망각이 위대하다면 기억도 가끔 놀라운 힘을 발휘 할 때가 있다. 예고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불쑥 내밀어지는 잔흔은 여전히 잘 갈린 작둣날처럼 시퍼렇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포등을 여러 개 매단 마당은 제법 밝았다. 어둑신해질 무렵부터 모여든 동네사람들로 마당은 빈틈이 없었다. 초가을이었지만, 마루에 뉘어진 나는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그 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꾸 몸을 뒤챘다.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면서 고개를 빼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기념으로,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심었다는 오동나무의 커다란 잎새 사이에 몸을 숨긴 달을 발견했을 땐 목을 비집고 나오는 탄성을 이 사이에 물고 아꼈다.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였다.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놓여진 나는 그 자리의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색 치마저고리 위에 타오를 듯 붉은 쾌자(快子)를 걸친 무당의 머리 위에는 꽃 갓이 조금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나는 갓이 언제쯤 떨어질까 하는 아이다운 궁금증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신이 오른 무당이 달이라도 따 내릴 듯 겅중겅중 뛰었다. 무당의 양손에 들린 칼이 달빛을 머금었다 토하면서 몸을 뒤챘다. 칼끝의 쇠고리에서 나는 쩔렁 쩔렁 소리가 계속 신경줄을 비틀었다. 쇳소리 사이사이로 무당은 끊임없이 사설을 뱉어내었다. 불쌍허신 조씨 망자…… 편안허게 가옵시고……. 나는 꽁꽁 언 겨울날,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며칠 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누던 대화가 귓속에서 꿈틀거리며 자꾸 키를 키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늬 시아버지가 갈 델 뭇 가고 구천을 떠도니께 쟤가 저렇게 자꾸 아프다는 겨. 이승에 뭐 존 걸 두고 갔다구 그러는지 원”
 할머니는 치마말기를 올려 코를 팽하고 풀었다. 개진개진 젖은 눈가가 금방 허물어질 듯 했다.
 “쟤가 워떤 애냐? 5대 독자여, 5대 독자. 굿 헐 돈 애껴서 앞길에 지 하래비 원혼을 달구 다니게 헤서야 쓰겄냐? 그러니께 너는 아무소리 허지 말고 보구만 있어”
 “그리두 요즘 시상에 굿 허는 사람이 워딨다고……. 그러너니 읍내 병원이라도 한번 더 가는 게 날텐디. 굿헐 만한 돈두 웂구…….”
 “애가 왜 자꾸 말이 많다냐? 그러다가 동티나먼 워쩔라구. 병원 가서 고칠 병 같으먼 벌써 나섰어야. 잘못되는 꼴 봐야 정신 차리 것냐? 그러구 돈 걱정은 말어. 내 몸을 팔어서라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당에는 열기 같은 것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뜸을 들이던 무당이 작두 위로 올라서자 둘러선 사람들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나는 이불을 제치고 조금 몸을 일으켰다. 무당은 시퍼런 작둣날에 발을 비벼댔다.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작두에서 내린 무당이 훠이- 훠이- 소리내며 다가올 때쯤엔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벌레처럼 옹송그려 몸을 조그맣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전부였다. 자갈밭을 달리는 듯 제법 낮아졌던 징과 장구소리가 숨이라도 넘어갈 듯 긴박해졌다. 무당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떨림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내 눈에 보이는 무당의 얼굴은, 악귀의 모습 그대로였다. 악귀는 순간순간 할아버지로 바뀌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생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이놈아. 억울해서 못 죽어. 눈을 감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눈을 감기 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쎄 늬 시아버지가 워디서 점을 봤다는디, 쟤가 전생에 자기 웬수였다는구나. 참말로 기가 맥혀서. 그 점쟁이가 당신이 살라면 당신 손자가 죽어야헌다구 그렜다먼서, 애를 저렇게 미워하는구나. 살만치 산 당신이 가야지 웬말이냐고 퉁을 줘도 씨도 안 멕히니. 당신 목심만 중헌 줄 아는 양반이니…… 얼마나 더 살 것다고 하나밖에 웂는 손자를. 아들, 메느리 젊으니 애는 또 낳으면 된다나 워쩐다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웬수같은 짓만 허고 댕기니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징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한을 풀지 못한 할아버지가 날 데리러 온 것이 틀림없다는 공포에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손을 연신 내저었지만 내 미약한 저항은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 마당가에 서 있던 오동나무도 넓은 잎새를 흔들면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오동나무가 다가오는 소리…… 징소리…… 달 없는 밤길에 나선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명은 잘못 삼킨 갈치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오지 않았다. 순간 의식을 잡고 있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이호준 단편 '올가미 벗어나기' 중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취재를 하면서] 시대, 아니 그 시대를 경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정종교와의 불화가 그들에게 돌을 던지게 했을 것입니다. 전국의 굿판을 따라다닐 만큼 열정적이지 못하지만, 무당이 인간의 서원을 하늘에 올리고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내리는 메신저 중의 하나임을 믿습니다. 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고 굿이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의 하나임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속은 혹세무민하는 타도대상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형성해온 '축' 중의 하나였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의 소리를 하늘에 전해준 이들이 그들이었습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무속신앙은 결코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용광로였고 타종교, 사회 변화와 끝없이 절충해 수천 년을 생존할 수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얼마 전 굿자리에 카메라 하나 들고 찾아가, 다리가 저리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특별한 몰입도 거부도 예비하지 않고 제 자신을 백지 한 장만큼이나 가벼이 한 채였습니다. 그것이 파헤쳐진 돼지의 육신에 삼지창을 꼽던 자리였는지, 늙은 만신이 맨발로 작두에 오르던 때였는지는 모릅니다. 제 눈에서 툭, 하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둠이 깃든 자리에만 서면 천형처럼 눈물을 억제하지 못합니다. 카타르시스라 믿고 싶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제 자신을 정화하고 내일을 향해서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