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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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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6 [사라져가는 것들 60] 공동우물18
2008. 5. 26. 10:46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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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분쟁이 그렇듯이, 그 날의 싸움도 애당초 심각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우물가에 앉아 나물을 다듬고 있던 월산댁이, 물을 길러온 초랭이(원래 이름은 철홍이다) 엄마를 보자 한 마디 툭 던진 게 발단이었다. “그러잖아도 찾아가려고 했더니만, 초랭어매 잘왔네. 거 애 단속 좀 지대로 혀” “예? 왜요? 우리 초랭이가 뭔 일을 저질렀남요?” “왜는 뭔 왜여. 어제 우리 집 텃밭에 들어가서 익지도 않은 토마토를 죄다 따서
” “어이구, 애새끼가 극성맞어서. 그런디 성님, 애들이 놀다보면 그러기도 허구….” 그나마 대화처럼 생긴 건 딱 거기까지였다. 월산댁의 입에서 “뭣이 어쩌고 어째?” 라는 호통이 천둥소리 만하게 터지면서 급기야 대판싸움으로 변한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월산댁이 폭발한 건, 초랭이 엄마가 말끝에 “당최 애를 키워봤어야 알지” 어쩌고 하며 구시렁거린 때문이었다. 차라리 호랑이 코털을 뽑는 게 낫지. 그러잖아도 애를 낳지 못해, 한이 수박 만하게 맺힌 여자의 가슴에 비수를 찔러 넣었으니 그게 보통 일인가. 급기야는 우물가에서 엎치락뒤치락 육탄전이 벌어졌다. 곁에 있던 동네여자들이 뜯어말렸지만 서로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어찌 손 써볼 수가 없었다. 결국은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한주먹씩 뽑은 다음에야 씩씩거리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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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우물가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물론 그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성님, 아우님으로 돌아가는 게 이 땅의 여인네들이었다. 우물가에서 매일 만나야 하는 처지에 끝까지 원수처럼 살 수야 없었다. 전에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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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마다 공동우물이 있었다. 물이야말로 촌락이 형성되기 위한 필수요소였다. 지하수가 흔한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따로 샘을 갖기도 했지만 대개는 공동우물을 파기 마련이었다. 공동우물은 부정을 타면 안 되는 귀한 존재여서, 팔 때는 금줄을 치고 정성들여 작업을 했다. 우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만들어주는 끈이기도 했다.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나그네와 동네처녀 사이의 사연은 대부분 공동우물가에서 시작됐다. 고려 태조 왕건도 그런 인연으로 장화왕후를 얻었다든가…. 우물 형태는 여러 가지로 나뉘었다. 지하수가 풍부하게 흐르는 곳은 조금만 파도 물이 나오기 때문에 간단하게 돌을 쌓거나 시멘트로 우물을 만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항상 물이 철철 넘쳐흘러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썼다. 또 샘 아래쪽으로 흐르는 물을 가둬 빨래터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물이 귀한 동네에서는 물길이 잡힐 때까지 땅을 파서 ‘노깡’(시멘트 토관)을 박거나 돌로 벽을 쌓고 두레박을 걸쳐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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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공동우물은 물을 길어가는 곳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소통과 정보교환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컸다. 어젯밤 누구네가 부부싸움을 했다든지 누구누구 일가족이 야반도주를 했다든지 하는 소식은 새벽에 물을 길러온 아낙네들의 입으로부터 온 동네에 전해졌다. 그런 정보를 듣기 위해 샘이 있는 집의 아낙도 공동우물로 나오고는 했다. 공동우물은 여자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장소이기도 했다. 힘겨운 노동과 고부간의 갈등이 반복되는 삶에서 조금이라도 비껴날 수 있는 유일한 틈이 바로 공동우물이었다. 아낙네들은 울화가 치솟아 오르면 물동이를 이거나 함지박에 빨래거리를 주섬주섬 담아 우물가로 나갔다. 그 곳엔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대신 속을 풀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나와 있기 마련이었다. 퍽퍽퍽! 빨래방망이를 두드려대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공동우물에서는 가끔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샘 앞에서 애들을 씻긴다고 핀잔을 주다가 싸움이 나기도 하고, 물 가까이에서 빨래를 했다고 다투기도 했다. 또 동네마다 앙숙이 한 둘 쯤은 있어서, 누가 뽕밭에서 뭘 했느니 말았느니 흉을 보다가 그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공동우물에서 만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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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공동우물 풍경은 시골과는 조금 달랐다. 수돗물의 혜택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달동네나 변두리에서는 동네사람들끼리 돈을 추렴해서 공동우물을 팠다. 하지만 어렵게 물길을 잡아 우물을 파놔도 물은 여전히 부족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툭하면 물싸움이 나고는 했다. 도시의 우물은 주로 깊게 파서 두레박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두레박질이라는 게 도르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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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놔도 감질이 날 만큼 더딘지라 양동이를 줄 세워놓고 기다리게 마련이었다.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면 그 줄이 더 길어졌다. 그러다 화장실 간 사이에 새치기를 했느니 원래 내 자리였느니 하는 자리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름철에 가뭄이라도 길어지면 우물은 시나브로 말라갔고, 그에 비례해서 사람들의 가슴은 쩍쩍 갈라져갔다. 그럴 땐 물 한 방울이라도 더 긷기 위해 밤새 우물가를 지키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공동우물이라고 갈등만 있는 건 아니었다. 비가 흔전하게 내려 물이 많을 땐 동네 인심도 넘쳐흐르게 마련이었다. 상추를 씻으러 왔다가 이웃에 한주먹 집어주거나 모처럼 사온 참외를 씻다가 슬그머니 찔러주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제대로 된 담조차 없이 사는 변두리 사람들의 삶이라 워낙 숨길 게 없기도 했지만, 우물가에 아낙 몇 명이 앉으면 누구네 집 부엌의 은수저 도둑맞은 얘기까지 낭자하게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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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골이든 도시든 공동우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한 오지까지 수도가 놓여 있기 때문에 공동우물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돼버렸다. 그 많던 우물은 메워져 흔적조차 없거나 뚜껑을 뒤집어 쓴 채 쓸쓸히 늙어가고 있다. 설령 메워지지 않은 우물이라도 가끔 강아지나 찾아가 얼굴을 비춰볼 뿐 찾는 이가 없다.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바가지를 얹어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던 우리네 어머니와 누이가 다시 우물가를 찾을 날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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