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계산기'에 해당되는 글 1

  1. 2008.03.03 [사라져가는 것들47] 주판15
2008. 3. 3. 17:40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판이 '계산기'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남모르게 머릿속으로 손익을 따져보는 걸 '주판알 굴린다'고 했습니다.
주판은 그만큼 우리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주판으로 셈을 하는 주산교육이 초등학교에 보급되기 시작된 196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80년대까지 등굣길에 주판을 들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까만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고 다녔지요.
주산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숫자를 부릅니다.
1에 7하고… 5에 7 더하면…
이 소리는 주산을 처음 배우는 저학년 교실에서 나오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곳에선 '또각 또각' 소리가 나지요.
주판알을 하나씩 올리고 내리는 소리입니다.
고학년 교실에서는 그 소리가 '따다다닥  따르르…' 로 바뀝니다.
잘 놓는 친구들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지요.
또 그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암산의 귀재이기도 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숫자를 한번 쳐다만 봐도 정확하게 답을 알아맞히니,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요.

상업고등학교에서는 주판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정규과목 중의 하나였으며, 상고를 나왔다 하면 '단' 정도의 실력은 돼야 "공부 좀 했구나"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주산을 잘하는 친구들은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수월하게 들어가 부모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라에서도 주산을 특기교육의 하나로 장려하여 1960년대부터는 정부검정을 실시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승급·승단시험을 본 것이지요.
주판을 흔들면 나는 자르륵~ 자르륵~ 소리는, 악기로 쓰기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노래방의 탬버린 역할을 한 셈이지요.
가끔은 자 대신 대고 종이를 자르거나 줄을 긋는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개구장이들은 주판을 스케이트 삼아 타고 놀다가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혼줄이 나기도 했지요.
그런 주판도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서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전자계산기라는 게 등장하고부터겠지요.
주산보다 셈이 빠르진 않지만, 일반인들이 쓰기에는 전자계산기가 훨씬 편했으니까요.
이제 전당포에 가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주판알을 튀기는 영감님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두뇌 발달을 돕는다고 아이들에게 주산 교육을 시키기도 하지만, 역시 디지털시대의 대세는 '주판의 퇴장'입니다.
모든 게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세상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뭔가 허전한 건 사실입니다.
주판알을 굴리던 시절에는 그나마 낭만 같은 게 있었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할까요?

그나저나 두뇌는 온통 놀게 놔두고 손가락만 쓰다보면 혹시 사람 머릿속이 속 파먹은 수박처럼 텅텅 비지는 않을까요?
쓸데없는 걱정 말고 할 일이나 하라고요?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posted by sagang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