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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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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로 변한 하란 평원.

하란의 흙집들.

울루자미에서 돌아서 나오는 길.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며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아득한 옛날사람들의 흔적이 있을 리 없지만 괜스레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 길을 아브라함도 걸었을까. 당연히 걸었을 것이다. 이곳 하란에서 꽤 오래 머물렀으니까. 말이 나온 김에 행적을 잠깐 추적해보고 가자. 아브라함은 노아의 아들인 셈의 10대 후손이다. 본명은 ‘높임을 받는다’는 뜻의 아브람이었고, ‘아브라함’은 야훼와 계약을 맺은 뒤 ‘열국(列國)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얻은 새 이름이다. 그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최초로 살았던 시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긴 유랑에 나선 이야기를 하려면 구약성서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데라가 아들 아브함(아브라함이 되기 전 이름)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사라가 되기 전 이름)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창세기 11장 31~32절)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다. 아브라함 일가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한 적이 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무튼 일가를 이끌고 이곳 하란 땅에 도착한 데라는 대체 꿈쩍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성서를 해석하는 이들은 ‘이미 조상들의 죄악 속에서 태어나, 죄악 속에서 먹고 마시면서 자라고, 죄짓는 일이 온 몸에 배어 있었으므로 중간 정착지인 하란에서 그 죄악된 행실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체류하였다’고 악담을 퍼붓지만, 종교에 까막눈인 내가 대체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있나.

 

흙집 대문.

흙집 외부에 놓여있는 앙증맞은 의자들.아무튼 뭉그적거리는 늙은 아비를 두고 내처 떠날 수도 없고 아브라함도 나름 고민이 컸을 것 같다. 그렇게 아버지 곁에 머물던 아브라함은 75세 되던 해 두 번째 야훼의 부름을 받는다. 역시 정착해서 살 팔자는 아니었나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세기 12장 1~2절)

 

아브라함의 하란에서의 삶은 그렇게 끝난다. 그렇다고 모든 인연이 끝나는 건 아니다. 그 뒤로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하란과의 다양한 인연의 끈을 이어간다. 계속 아브라함 이야기만 하면, 은근히 성서에 기대여 여행기 공짜로 쓰려고 한단 말이 나올 테니, 이쯤에서 이야기를 돌릴 일이다.

 

흙집 안뜰.

흙집 천장. 끝에 구멍이 뚫려있다.

흙집 주인.

이젠 흙집을 구경해보기로 하자. 이 고깔형 집들이야말로 하란을 하란답게 하는 결정적 요소다. BC 3000년쯤부터 짓기 시작했다고 짐작할 뿐 정확한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고대인들이 동굴살이를 마치면서 처음으로 지은 주택의 형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목재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이 지역에서는 흙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굳이 다른 집을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흙집은 흙과 밀짚을 섞어서 만든 벽돌을 햇볕에 말려서 쌓는 방식으로 짓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 땅에서 짓던 흙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도 수십 년 전까지는 황토에 볏짚을 섞어서 만든 벽돌로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벽돌을 30~40단까지 쌓아올리는데 고깔 부분은 높이가 5m나 된다. 맨 위는 뚫려 있어서 빛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집안의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풍구 역할을 한다. 지붕을 그렇게 높이 세우는 것은 이 지역의 뜨거운 날씨 때문일 것이다. 굴뚝처럼 솟아오른 높은 지붕이 실내의 열기를 빨아들여 배출하기 때문에 50도를 오르내리는 기온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이겠지. 지붕 끝에는 납작한 돌을 서로 기대어 놓고 그 위에 또 하나의 돌을 얹어놓았다.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지역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집 표면이 자꾸 깎이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 수리해야 한다고 한다. 직접 들어가 본 집은 주거용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에게 장사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정원의 작은 나무의자들이 눈길을 끈다. 이 지역에서 자주 보는 의자인데 들고 오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흙집 아들. 옷도 빌려주고 모델이 돼준다.

 

집안은 작은 민속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양하게 꾸며 놨다. 어느 방을 들어가 보니 아랍인들의 전통의상이 걸려 있다. 하란의 주민은 대부분 투르크족이 아니라 아랍인들이다. 18세기부터 이곳에 정착했는데, 아직도 사막 부족인 베두인 족의 복장을 하고 그 풍습을 지키며 산다고 한다. 젊고 잘 생긴 주인집 아들이 관광객들에게 아랍풍의 옷을 빌려 주고 함께 사진을 찍어준다. 물론 옷은 돈을 받고 빌려준다. 뭐, 솔직하게 말하면 미끼인 셈이다. 어쩌면 아들이 아니라 일당을 주고 모델을 고용한 건지도 모른다.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거봐. 장삿속 확실하잖아. 나 질투하는 거 맞지? 응접실로 짐작되는 방에는 금방 손님을 맞기라도 할 듯 카펫과 방석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관광객들도 그곳에서 음료나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집 처마에 신발을 매달아놓은 모습이 이채롭다. 왜 거기 걸어놓았느냐고 물었더니 악마를 퇴치하기 위한 거란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나자르본주의 대용품인 셈이다. 이곳에도 일하는 아이들이 있다. 형제로 보이는 아이들이 졸졸 따라다니길래 물어봤더니 큰 아이는 예비 중학생이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한다. 지도나 목걸이 등의 장신구를 판다. 이 동네에 사는데 방학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란다. 얼굴에 구차함 같은 기색은 전혀 없다. 한 끼 밥 때문에 내몰린 아이들이 아니어서 마음이 편하다. 아이들과 한참 어울려 논다. 큰 아이는 카메라를 들이대면 활짝 웃어주는데 작은 녀석은 영 수줍어해서 얼굴을 가리느라 정신이 없다. 흙집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은 시멘트 집에서 산다고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내가 보기엔 흙집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흙집 내부. 온갖 장신구들이 걸려있다.

응접실.

 

혼자 터벅터벅 동네 구경에 나선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고깔처럼 생긴 흙집들이다. 공터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쓰레기장에는 염소들이 종이 두어 장을 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 담 위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데 누가 자꾸 부르는 느낌이 든다. 두리번거리다 저만치 담장에 기대어 “알로” “알로” 외치는 처녀와 눈이 마주친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으니 분명 나를 부르는 것이다. 이게 몇 십 년만이냐. 마음은 달려가는데 몸은 제자리다. 처녀가 부르니 은근히 겁이 난다. 혹시 처녀귀신? 설마 대낮에 귀신이 나올리는 없고…. 난 고기가 좀 질겨. 좀 젊은 총각 꼬셔봐. 주민이라고는 그녀와 염소 떼에 묻어서 우우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전부다. 어른들은 전부 어디로 간 걸까. 이왕 지붕에 앉았으니 아까 중동무이한 성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 하란이 다시 성서에 등장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얻을 무렵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 그의 처 사라가 90세 때 낳은 늦둥이었다. 가임기간이 어떠니 배란이 어떠니 하며 요즘의 상식으로 따지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아브라함은 이 늦둥이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했을까. 아브라함과 여종 하갈 사이에 태어난 이스마엘이 그 어미와 함께 황야로 내쫓긴 것도 결국은 이삭이란 존재의 등장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파고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테니 궁금한 분은 구약성서 탐독을 권한다. 아무튼 아브라함은 이삭을 장가보내기로 한다. 이삭도 어언 나이 40이 넘은 ‘노총각’이 됐을 무렵이다. 아브라함은 가장 믿는 늙은 종을 부른다.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창세기 24장 3~4절)

 

고깔 모양의 지붕 끝에는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납작한 돌을 올려놓았다.

이때는 아브라함도 길고 길었던 유랑을 마치고 가나안에 정책한지 오래였다. 고생하던 아내 사라는 먼저 세상을 떴고. 어지간하면 가까운데서 며느릿감을 고를 만도 하련만 그는 굳이 옛 고향에 가서 데려오라고 했다. 야훼의 명령으로 가나안 땅에 갔지만 그도 고향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미리 찍어둔 참한 색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달랑 종 하나를 느닷없이 보내서 며느릿감을 데려오라니 배짱 한번 두둑하다고 할 수 있겠다. 까라면 까야지, 종 처지에 미주알고주알 따질 수 있나.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낙타 열 마리에 신붓감에게 줄 선물을 싣고 터덕터덕 길을 떠난다. 여기서 케케묵은 문제를 하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늙은 종이 향한 ‘아브라함의 옛 고향’은 어디란 말인가? 당연히 아브라함이 태어난 갈대아 우르가 1차 후보지가 된다. 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이라크의 남쪽에 있는 우르다. 헌데 늙은 종이 주인집 색싯감을 구하겠다고 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다. 아브라함의 이동로를 따라 되짚어 간다면 종은 늙어 죽어버리고 며느릿감으로 출발한 여자는 시어머니감이 돼서 도착하기 딱 알맞은 거리다. 그럼 어쩌라는 것이냐고? 그래서 나는 ‘하란 고향 설’, 더 나아가 ‘샨르우르파 출생 설’을 다시 들고 나오고 싶은 것이다. 가나안과 하란은 상식적인 거리 안에 있으니까. 아브라함은 아버지를 두고 온 하란을 고향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학자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서 아주 생떼는 아닐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지금 성서를 배경으로 추리물을 쓰고 있는 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궁금한 여행자일 뿐이다.

처마에 걸려 있는 신발.

딴소리 늘어놓다 늙은 종 놓칠라.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가는 늙은 종은 긴 여행 끝에 ‘나홀의 성’에 도착했다. 성서에는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라고만 돼 있다. 이왕 쓰는 거 좀 성의껏 쓸 것이지. 메소보다미아야 메소포타미아를 이른다는 걸 알겠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나홀의 성은 대체 또 어디란 말이냐. 괜히 지명 가지고 시비를 거는 바람에 끝까지 골치 아프게 돼버렸다. 나홀, 나홀이라…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면 사람의 이름인데…. 성서를 뒤져보자. 아! 창세기 초반에 나오네. 바로 아브라함의 동생이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을 셋을 두었는데 장자가 바로 아브라함, 둘째가 나홀, 셋째가 하란이다. 하란은 아들 롯을 낳고 일찍 죽는다. 이제 이야기가 조금 풀린다. 이 나홀이 어디에서 살았느냐만 밝히면 되니까. 궁금한 건 갈대아 우르에서 데라가 일가족을 이끌고 나올 때 나홀도 동행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걸 확인하려면 저 앞에 언급한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창세기 31절) 눈을 씻고 스무 번을 읽어봐도 어린 롯의 이름은 나오는데 삼촌씩이나 되는 나홀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럼 여기서 지명 찾기를 그만 둬야할까?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적당한 짐작도 필요하다. 나는 나홀 역시 하란으로 갔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살다가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땅으로 떠날 때 남아서 아비 데라를 모셨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그나마 늙은 아비를 두고 떠나는 아브라함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나홀의 성’, 즉 나홀이 사는 곳으로 찾아간 것이다. 신경 안 쓰고 성경에 쓰인 대로 지나가면 되련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다. 몇몇 책들은 늙은 종이 찾아간 곳을 아무런 고민의 흔적도 없이 하란으로 적고 있다.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나홀의 성에 거의 도착할 무렵 샘터에서 다리쉼을 한다. 그러면서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한다. 쯧쯧, 본인 장가는 가셨는지 모르겠네. 그는 나름대로 아브라함의 며느릿감이 될 여자의 기준을 정했다. 종 치고는 조금 오버한 셈이다. 그 기준은 ‘자신에게 물을 줄 뿐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주는 아가씨가 바로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이었다. 그냥 떠먹어도 되련만.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각본에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듯 리브가라는 처녀가 샘 곁으로 나온다.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창세기 24장 16~17절)

 

이쯤 되면 ‘목마른 놈이 샘 판다’는 말은 말짱 헛소리다. ‘목마른 늙은 종 처녀 오기 기다린다’ 쯤으로 바꾸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아무튼 성서에도 ‘아리따운’ 여자를 언급했으니 아름다음을 추구하는 여자들을 속물 취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연이 맞으려고 그랬던지 리브가는 목마르다는 늙은 종에게 정성들여 물을 준다. 그것뿐이겠는가.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부어 낙타를 마실 수 있게 하더니, 물을 더 길어와 낙타들의 갈증도 풀어준다. 착하다. 참 착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치고 못된 사람 본 적 없다.

 

밖에서 본 흙집 대문.그러고 보면 우물이라는 게 남녀를 맺어주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게 틀림없다. 고려 태조 왕건도 장화왕비 오씨를 우물가에서 만났다지. 물 한 모금 달랬더니 바가지에 버들가지를 띄워주더란다. 이유를 물었더니 물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고 했다나. 아가씨들이여. 좋은 신랑감 구하려거든 우물가로 갈지니. 그나저나 어느 시골에 우물이 있으며 그럴 만한 아가씨는 또 있을까. 물을 얻어 마시고 타고 온 낙타들이 갈증을 푸는 것을 본 늙은 종은 감격할 수밖에. 그래서 묻는다. “네가 누구의 딸이뇨?”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부두엘의 딸”이라고 리브가가 대답함으로써 족보가 밝혀진다. 등장인물도 많고 말도 복잡하지만,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손녀라는 뜻이다. 누가 미리 짜놓은 각본 같지 않은가. 아무튼 늙은 종은 리브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가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이야기를 모두 서술해서 무얼 하랴. 그래도 결정적인 것 하나는 전하고 가야지.

 

그들이 가로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창세기 24장 57~58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니 리브가에게 “거시기 땅에 40 넘은 총각이 하나 있는데 시집갈래?” 하고 물었더니 군말 없이 간다 하더라는 얘기다. 인연은 그런 것이다. 늙은 종을 따라간 리브가는 이삭과 오래 오래 잘 살았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염소들.

하란의 흙집 지붕에 홀로 앉아 시선을 아주 멀리 던져본다. 이삭은 저물녘에 들판에 나가 묵상을 하다가 낙타들이 오는 것을 봤다지. 말이 묵상이지 색시 될 처녀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기다렸겠지. 낙타들 중 한 마리의 등에 아내가 될 리브가가 탔더란다. 늙은 총각 이삭은 한 눈에 자기 사람임을 알아봤겠지. 색시를 구하러 갔던 늙은 종이 따라오고 있었을 테니까. 그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을까? 내 눈 앞에 그 풍경이 펼쳐지는 것 같다. 아득한 시절에 살았던 그들과 내가 한 공간에서 만난 것 같다. 이곳 하란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이 만날 수 있는 땅.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담장에 기대 앉아 “알로, 알로”를 외치던 처녀는 아니다. 번뜩,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 이제 지붕에서 내려갈 때가 됐구나. 아직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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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연못으로 흐르는 수로.

성스러운 연못과 모스크.

아브라함은 정말 샨르우르파에서 태어난 것일까? 그 대답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를 좀 추적해보자. 아브라함은 아담의 후손이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고 175세에 세상을 뜬 그는 노아의 방주노아와도 58년이나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출생은 전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삶의 궤적은 전설보다 역사 쪽에 가깝다. 아브라함이 태어났을 때는 홍수 심판이 있은 지 대략 292년이 지난 뒤고 바벨탑 사건 이후 100년 정도 지난 뒤이다.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고대 바빌론의 황제 함무라비 보다는 200년쯤 앞서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그의 행적은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해 하란과 세겜을 거쳐 가나안에 이른다. 그런데 왜 태어난 곳이 그리 명확하지 않을까? 그 답은 갈대아 우르에 들어 있다. 잠깐 구약성서를 보고 가자. 아브람(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다)이라는 사람이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 1126절부터다.

 

데라는 칠십세에 아브람과 나흘과 하란을 낳았더라(창세기 11-26)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창세기 11-29)

 

문제는 본토라고 적은 갈대아 우르가 어디인지 확실히 증명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터키 사람들은 샨르우르파야 말로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한다. 또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져 왔다. 1930년대 이후 시리아의 몇 곳에서 출토된 토판 문서를 해독해보니 우르라는 도시가 여러 곳 있으며 모두 하란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브라함 동굴 같은 유서 깊은 곳도 이곳에 있지 않은가.

 

장작이 변했다는 물고기의 후손들.

먹이를 탐하는 물고기들.

하지만 학자들은 옛 바빌로니아가 있었던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지역, 즉 지금 이라크 남부와 쿠웨이트가 있는 지역을 우르라고 본다. 북쪽의 우르, 즉 샨르우르파에서 남쪽으로 1,500km 떨어진 곳에 고대도시 우르가 있었다. 영국의 고고학자 울리라는 사람에 의해 발굴되면서 바로 갈대아 우르가 이곳이라는 게 정설이 되었다. 발굴된 지하 무덤, 부장품 등이 갈대아 우르임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특히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여기저기 떠도는 별 볼 일 없는 유목민으로 묘사돼 있지만, 사실은 그의 고향 우르에서는 대도시의 귀족이었다고 주장한다. 또 아브라함은 빈손으로 가나안 땅에 간 것이 아니라 발달된 도시 문명의 법과 도덕 등을 가지고 가서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했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그렇게 입증됐다니 믿을 수밖에. 그런데도 왜 나는 자꾸 샨르우르파 쪽에 정이 더 갈까? 내가 이라크에 있다는 우르를 직접 가보지 못해서 그럴까? 과학보다는 전설을 믿고 싶어 하는 비과학적 사고방식 때문일까? 구약과 지도를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데라가 그의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창세기 11-31)

 

산책 나온 무슬림들.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머물렀다는 창세기의 내용을 기억한 뒤 지도를 보자. 학자들이 갈대아 우르라고 주장하는 이라크의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아까 말했듯이 1,500km나 된다. 그곳에서 가나안,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 서쪽 해안지역은 서쪽으로 방향만 틀어서 곧장 가면 그 거리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남쪽으로 갔다는 그들이 왜 북쪽에 있는 하란으로 갔을까? 차는커녕 마차 한대 없는 그들이 굳이 그 먼 길까지 올라간 이유는 뭐였을까. 또 지나가는 길이었다면 그냥 지나갈 것이지 그 낯선 하란에서 말뚝 박고 살 건 또 뭐란 말인가. 혹자는 가로지르는 길이 사막이라서 좋은 길을 택하다 보니 돌아서 갔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직접 가보지 않아서 큰 소리 치긴 좀 그렇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벗어나면 그 어느 곳도 광야이긴 마찬가지다. 하란으로 가는 길이라고 아스팔트가 깔려있을 턱이 있나. 그렇다면 지금의 샨르우르파, 아브라함의 전설을 지닌 그곳이 창세기에 나오는 우르에 더 가깝지 않을까? 손자까지 봤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문제였을 것이다. 샨르우르파를 당당하게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란쯤 걸어가다가 아이구! 허리도 아프고 난 더 이상 못 가겠다하면서 그냥 주저앉아 버린 건 아닐까. 믿음이 별로 깊지 않았던 그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고향을 떠나 멀고먼 가나안땅까지 갈까. 하란까지만 갔으면 성의를 보인 거지. 별 지식도 없이 너무 따지는 건가? 내가 성서 전문가들이나 고고학자들의 견해를 뒤집을 방법은 없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의 뿌리는 여전히 뽑히지 않는다.

 

동네 아이들도 많이 눈에 띈다.

이제 성스러운 물고기 연못구경을 가보자. 연못은 아브라함의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다. 수로를 따라가다 보면 르즈마니예와 압두르하르만이라는 두 개의 모스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직사각형의 긴 연못을 볼 수 있다. 이 연못은 도시의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하는 듯,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거닐고 있다. 그런데 왜 이곳이 성스러운 연못이 되었을까? 아브라함 동굴에서 끊어진 전설은 여기서 계속된다. 신상을 파괴한 죄로 감옥에 갇힌 아브라함은 드디어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님로드 왕, 그냥 죽이기에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성 꼭대기에 화장용(火葬用) 장작을 쌓고 아브라함을 매단 다음 불을 질렀다. 말 그대로 화형(火刑)을 시행한 것이다. 이걸 그냥 두면 하나님이 아니지.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며 아브라함을 에워싸려고 하자 느닷없이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몰치기 시작했다. 화형장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님로드 왕이 도망쳤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아브라함은 성 아래 장미 밭으로 떨어지고, 그 장미 밭은 호수가 되었다. 타다 만 장작들은 물고기로 바뀌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 연못에 있는 물고기들이 바로 그때 타다만 숯이 변한 물고기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잉어처럼 생긴 이 물고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뭇거뭇한 자국을 볼 수 있다. 기적의 증거인 이 물고기들은 아무도 잡지 않는다. 만약 잡아먹게 되면 곧바로 장님이 된다는 설도 있다. 연못을 들여다보니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이다. 물고기들이 너무 많다 보니 저희들끼리 교통정리를 하는 것도 일일 것 같다.

 

저거 하나 건져봐?

물고기 밥을 조금 얻어서 던져본다.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시커멓게 몰려들더니 저희들끼리 머리를 박고 꼬리를 치고 난리도 아니다. ! 이게 바로 아귀다툼이라는 거구나. ‘배가 고프든 안 고프든 일단 먹고 보자가 그들의 모토인 것 같다. 나는 왜 이 성스러운 물고기들에게서 지옥도를 보는 걸까. ‘너 죽고 나 살자고 진흙탕에서 구르는 욕심 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그들과 자꾸 겹쳐진다. 대체 성스러운 것은 무엇이고 속된 것은 무엇인가. 그 경계는 누가 어떻게 지어준단 말인가. 아이 둘이 지나가길래 불러서 묻는다.

이 물고기 잡아먹으면 어떻게 돼?”

죽어요.”

정말? 네가 봤어?”

아뇨. 먹고 죽은 사람이 있대요.”

몇 사람에게 물어봐도 왜 먹으면 안 되는지 분명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성스러운 물고기니까’ ‘병에 걸린답니다’ ‘눈이 멀어버린대요대답도 가지각색이다. 하긴 정답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있는 면접요원처럼 집요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왜 이 물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지 물어본다. 재미있는 대답도 있다.

이건 나무가 변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물고기를 먹으면 나무를 먹는 거지요.”

흐흠, 그건 그렇겠네. 나무를 먹으면 반칙이지. 지금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시절도 아니잖아.

 

반대쪽 모스크.

 

결정적인 대답을 듣고 질문 행각을 멈춘다.

나 같이 종교를 안 믿는 사람은 먹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정 그렇다면 한번 해보세요.”

어떻게 되는데요?”

잡으려고 손을 넣는 순간 다른 사람들한테 맞아죽을 걸요?”

그래. 그게 정답이네. 맞아죽지 않으려고. 그럼. 이 먼 곳까지 와서 맞아죽으면 안되지. 사실 나도 그 신성함을 믿는다. 신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영역까지 무너트리고 나면 대체 어디에 기댈 것인가. 그런데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늘 그 영역을 들여다보지 못해 안달이다. 나야말로 이 물고기들이 영원히 신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이 연못에서 하얀색 물고기를 보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천국행 티켓 한 장 확보해볼까 하고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풍진에 물든 흐리멍덩한 눈에는 회색빛 물고기 한 마리 들어오지 않는다. 이 연못을 비롯한 공원 수로를 흐르는 물은 모두 성채가 있는 담라즉 언덕에서 흘러들어온 지하수라고 한다. 그런데도 물고기가 워낙 많다보니까 지하에 산소를 공급하는 파이프를 묻어놓았다고 한다. 또 프랏대학교 연구진이 조사를 해봤더니 모두 네 종류의 물고기가 살고 있더란다. 그러니까 장작이 네 종류나 있었다는 얘기?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눈에는 비슷비슷하다.

 

샨르우르파 지도.

 

샨르우르파의 역사를 잠깐 얘기하고 가야지. 해발 540m에 자리 잡은 이 도시의 역사는 9,000년을 헤아린다. 아니, 뒤에 가볼 괴베클리테페를 감안할 때는 그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역사에는 약 4,500년 전에 일어난 일부터 기록돼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후리라고 불렀던 종족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후리아인이인데 BC 2500년경에 코카서스 산맥을 출발해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나톨리아 남동부와 시리아, 이라크 북부까지 내려가 정착했다. 이들은 우르퀘쉬라는 왕국을 세우고 잘 나가는 듯 했지만 BC 2000년대 초반 바빌로니아 제국의 힘이 팽창하면서 그 속국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바빌로니아 역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불꽃처럼 일어났던 히타이트에 망하고 만다. 그게 BC 1531. 후리아인들은 다시 미탄니라는 왕국을 세우지만 또 히타이트 왕국으로 흡수되는 운명을 맞는다.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뒤 BC 6세기부터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BC 333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휘하에 들어간다. BC 303년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이었던 셀레우코스 1세는 이곳 동부 지역을 점령하면서 마케도니아 퇴역병들을 정착시킨다. 낯선 땅에서 살게 된 그들은 이 곳을 자신들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의 수도 이름을 따서 에데사라고 부르게 된다. 이 에데사라는 이름을 잘 기억해 두자.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에데사는 BC 63년 로마의 영향권 아래 들어간다. 그 뒤 로마의 중요한 요충지 중 하나로 성장하는 것은 물론 초기 기독교 교회도 발달하게 된다.

 

샨르우르파 거리.

낯선 땅의 역사를 편년체로 늘어놓는다고 머리에 쏙쏙 들어올 리가 있나. 이왕 그리스도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사람 이야기나 하나 하고 넘어가자. 통치자들 중에 세계 최초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누굴까. 바로 샨르우르파에 있었던 에데사 왕국의 아브가루스 왕이다. 아브가루스 왕은 끔찍한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마침 예수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예수에게 편지를 썼다. 병을 낫게 해주소서. 예수는 답장을 한다. 내가 요즘 바빠서 직접 갈 수는 없지만 제자들 가운데 한명을 보내겠소. 예수의 보내진 70중 한 명인 타데우스(다대오)가 에데사 왕국의 궁전에 들어서는 순간 왕은 그의 얼굴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고 엎드려 절을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환상이었다. 우리 왕이 죽을 병에 시달리더니 맛이 좀 간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런 시선이 문제가 아니다. 왕이 묻고 타데우스가 대답한다.

당신이 예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한 제자입니까?”

왕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을 진심으로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것입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왕이 예수와 성부를 믿는다고 고백하자 타데우스는 왕에게 손을 얹었다. 병은 순식간에 나았다. 타테우스는 그곳에 머물면서 왕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복음을 전했다. 아브가루스 왕은 성자로 추앙되어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511일을 그의 축일로 삼고 있다.

 

숙소에서 바라본 샨르우르파.

에데사는 로마를 거쳐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가 된다. 609년에는 페르시아에 정복당하지만 622년에 되찾는다. 하지만 638, 페르시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슬람군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1087년에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에 편입된다. 이 에데사가 역사, 특히 유럽사에 이름을 뚜렷하게 각인시킨 계기가 또 한 번 있었는데 바로 십자군 원정이었다. 1차 원정 때 참가한 젊은 지도자 보두앵 백작은 에데사를 점령하고 왕국을 세웠다. 그는 12년 동안 이 왕국을 통치 한 뒤, 예루살렘 왕국의 성묘 수호자였던 형 고드프루아가 사망하자 그곳 왕으로 옮겨간다. 그 뒤 에데사 왕국은 침체일로에 놓이게 된다. 결국은 11441224일 이슬람의 강자 젠기(장기)의 대대적 공세에 의해 무릎을 꿇고 만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스러운 크리스마스이브, 이 왕국에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 남자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여자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서방세계는 죽 솥처럼 들끓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게 아니냐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데사 왕국이 망한 데에는 그럴 만 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십자군 원정사를 읽을 때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이 있다. 1차 십자군들이 어떻게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 십자군은 나라에서 보내는 군인이 아니라 개인들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병보충이 될 리 없었다. 싸우다 죽고 부상당해 죽고 늙어서 죽으니 병력은 갈수록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네 개의 나라를 세웠다. 물론 이슬람 세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자신들이 무단으로 점령한 곳이라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인 서방세계. 성스러운 도시 에데사를 탈환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2차 십자군이 출발하지만 땅 한 뼘 찾지 못하고 궤멸된다. 셀주크투르크 이후 에데사는 몽골, 티무르, 이집트의 맘룩 조 등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으로 치면 엄청나게 드센 팔자다. 1517년에 오스만투르크 땅이 된 뒤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1637년에는 지명이 에데사에서 우르파로 바뀌었는데, 그 근원은 이 지역을 거쳐 간 왕국 중의 하나인 오로아 또는 오흐하에서 온 것이다. 우르파가 오스만투르크가 아닌 다른 나라 땅이 되었던 적이 또 한 번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끝난 뒤. 독일편에 가담했던 오스만투르크가 패전국이 되면서 처음에는 영국군이 그 뒤에는 프랑스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슬람 민병대는 이곳을 시리아 영토로 포함시키려는 프랑스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했다. 1920411일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1924년 이 지역은 새로 들어선 터키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샨르우르파라는 지금의 이름은 1984년 얻게 됐다. 샨르는 영광스러운이란 뜻으로 터키 혁명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도시들에게만 허용되는 명칭이다. 우르파 지역 주민들은 이 이름을 얻기 위해 10년 이상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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