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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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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구릉 위에서 바라보면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고대인들이 돌을 이용해 팠다는 물저장고.

다시 샨르우르파. 괴베클리테페로 가는 길에는 평원과 낮은 구릉이 교대로 출렁인다. 내 가슴도 함께 출렁거린다. 30분쯤 달렸을까. 포장도로를 벗어난 차가 심하게 덜컹거린다 싶더니 황량한 산악지대가 불쑥 다가선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제 저녁에 잠깐 있었던 해프닝이 생각난다. 함께 여행 중인 고참 기자 한 사람이 저녁 식사자리에서 샨르우르파의 관계자에게 농담 삼아 한 마디 던졌다. 아마 이지역의 유적, 특히 괴베클리테페에 대한 자랑을 잔뜩 들은 다음이었을 것이다.

너희들은 뭐든지 세계 최초, 인류 최고(最古).”

그 말이 통역을 통해서 전달되는 순간 그 친구의 얼굴 표정이 싹 바뀌었다. 싸늘하다 못해 푸르딩딩해지는 표정. 제법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느닷없이 가라앉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렇게 대놓고 내색할 건 뭐람? 성질머리 하고는. 물론 그 말을 한 사람은 모욕을 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분위기를 띄우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워낙 대단한 유적들이 즐비하다 보니 배도 살짝 아프고 해서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괴베클리테페를 자랑스러워하는지 확인하기 딱 좋은 해프닝이었다. 샨르우르파 사람들은 심지어 세상의 모든 교과서는 바뀌어야 한다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는 괴베클리테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과문한 탓도 있지만 그만큼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큰 바위 구덩이를 파는 과정. 작은 구멍을 계속 뚫어나간다.

너럭바위를 지키는 개.

차는 공사용 임시 주차장에 멈춰 선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제법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크고 작은 구릉, 끝이 안 보이는 평원이 저만치 엎드려 있다. 이곳은 아직 발굴 중이기 때문에 관광지로 개발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들었던 자랑에 비해서는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발굴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널따란 바위에 뚫린 크고 작은 구멍들이 눈에 들어온다. 안내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큰 바위구덩이는 물 창고로 쓰인 곳이라고 한다. 지하수가 없기 때문에 빗물을 받아 쓴 것 같다. 그럼 작은 구멍은? 큰 구멍을 만들기 위해 파놓은 것들이다. 금속은 구경도 할 수 없던 시대에 저렇게 큰 구멍을 어떻게 팠을까 궁금했는데 작은 구멍에 해답이 있었다. 단단한 돌을 정()으로 삼아 바위에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고, 구멍 이외에 남아 있는 부분을 자르고 또 구멍을 뚫고 자르고 해서 큰 구덩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말로 하니까 두꺼비 파리 잡듯 쉬워 보이지 실제로 하라고 하면 거품부터 물 일이다. 돌로 돌에 구멍을 내고 주변을 깎아내는 과정을 거듭해서 물탱크를 만든다고? 모르긴 몰라도 1~2년이 아니라 최소 수십 년이 걸리는 공사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2,000년이 흐른 지금, 그 위대한 작업의 흔적에는 토사가 쌓여있고 누군가 던진 종이컵 하나만 덩그러니 들어 있다. 헌데 이상한 일도 있지. 아까부터 개 한 마리가 깎아놓은 돌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다. 사람들이 오고가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뭔가를 고집스레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저 개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눈인사로 작별을 하고 발굴 현장으로 간다.

 

발굴 중인 신전

석상들이 둥그렇게 서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웅덩이. 이곳이 발굴 현장이다. 웅덩이 안에는 큰 돌들이 둥그렇게 늘어서 있고 주변에는 작은 돌을 담처럼 쌓아놓았다. 그리고 발굴 작업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 발판들이 웅덩이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돌기둥들. 어느 건 T자형으로 어느 건 갓을 쓴 비석처럼 생겼다. 받침대 위에 점잖게 서 있는 것들도 있다. 사람으로 보면 양반의 씨를 타고 난 돌들인가 보다. 하지만 어느 건 중간에 잘려서 뭉뚝한 게 변방의 수자리를 살다 온 백성처럼 궁기가 흐른다. 대부분은 스스로 서 있거나 자기들끼리 어깨를 겯거나 지지대에 기대고 있지만 아예 누운 것도 없지 않다. 그런 돌기둥들이 회의라도 하는 듯 5~10m의 간격으로 원을 그리고 서있다. 선사시대 거석 유물들이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니 돌에는 각종 동물들이 양각돼 있다. 마모되는 바람에 제대로 알아보긴 어렵지만 소나 사자, , 뱀 등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도마뱀? 악어? 아니, 늑대나 여우를 닮은 형상도 있다. 그림들이 낯설지 않다 했더니 샨르우르파 박물관에서 본 것들과 닮아 있다. 어느 돌기둥에는 사람의 형상을 표현한 듯 손가락이 그려져 있고 허리 부분에 여우가죽 같은 것을 두르고 있다. , 사람이 여우 가죽을 벗겨서 허리에 둘러 치부를 가린 형상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사냥과 관련된 조각들이다. 마모되기 전에는 무척 정교했을 것 같다. 이 조각들을 새기기 위한 도구도 돌이었겠지.

 

멀리서 바라본 발굴지.

 

바위에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석기 시대 유물이라고 하면 기껏 돌도끼나 돌칼 정도만 봐온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석기라는 것들도 손에 쥐기 좋게 깨진 것을 골라 쓴 건지 정말 사람이 두드리고 갈아 만든 것인지 늘 의심스러웠다. 그런 수준의 원시인들이 이런 작품들을 남기다니. 상상을 해보자. 원숭이나 벗어났을 정도의 인간들(창조론자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그림일까?)이 겨우 앞이나 가리고 앉아 돌로 돌을 조각한다. 이 거대 유적이 조성된 건 BC 9500년에서 BC 8500년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12,000년 가까이 된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게 어느 정도의 옛날인지 감이 안 잡히는 이들을 위해 또 예를 찾아보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친절한 작가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거석문화를 치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선사시대의 거석기념물은 서남아시아에서는 요르단 지역에 BC 4000년경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에서 초기 청동기시대에 걸쳐 서부와 북부 유럽에서 많은 거석기념물이 건립되었다. (중략) BC 3000년대에 속하는 것이 많다.’ 여기에서도 거석문화의 기원을 기껏 BC 4000년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거석문화의 대표 선수로 꼽히는 영국의 스톤헨지는 얼마나 됐을까. 이왕 불러온 김에 지식백과를 더 찾아보자. ‘선사 시대인 기원전 3100년 무렵부터 세워지기 시작해서 기원전 1400년경에야 완성된 스톤헨지는여기도 BC 3100년이다. 그렇다면 BC 9500년에 세워졌다는 이 돌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무려 6,0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12,000년 전, 인간들은 기껏 해야 동굴에서 살면서 채집과 수렵으로 연명했을 것이다. 샨르우르파 사람들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인류사를 새로 써야 하는 혁명적 유물 앞에 서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곳.

 

사람의 형상을 새긴 돌. 손과 허리띠, 중요 부위를 가린 짐승 가죽 등이 보인다.

헌데 원시인들이 왜 이런 거대 유적을 만들고 동물들을 새겨 넣었을까. 이곳이 사원이나 신전이었을 것이라는 게 그 답이 될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접신(接神)을 위한 장소를 치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기 마련이니까. 사원이나 신전이었다는 추정은 인간이 거주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로 더욱 신빙성을 얻는다. 하늘에 제를 지낼 때나 장례의식 때만 찾아오는 신성한 곳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다는 걸 확인해주는 조각도 있다. 새들이 시신을 먹는 장면이 표현돼 있다. 그렇다면 조장(鳥葬)을 치렀다는 얘기다. 지금도 티베트 등 일부에는 조장 풍습이 남아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도 그런 장례 풍습을 지킨다고 한다. 더 이상 의심할 것도 없이, 나는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최초의 사원, 즉 최초의 종교건축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를 새로 써야한다는 말이 이제 조금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건 그렇고 12,000년 전의 사람들, 즉 원시인들은 아무런 도구도 없이 이 거대한 돌들을 어떻게 확보했을까. 가장 큰 것은 높이가 5.5m, 무게가 20t씩이나 한다고 한다. 또 길들인 동물도 없던 시절, 이 돌들을 어떻게 날랐으며 또 이 조각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스터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구라고는 우리가 봐온 돌도끼나 돌칼밖에 없었던 시절이다. 기계를 동원할 수 있는 지금이라고 해도 쉬운 공사는 아닐 것 같다. 그 방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2년이 아니라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에 걸쳐 공사를 계속했을 거라는 짐작 외에는.

 

이 바위에도 동물이. 전갈처럼 보이는 게 새겨져 있다.아득한 구릉들과 평원.

괴베클리테페는 배꼽언덕이란 뜻이다. 괴베클리가 배꼽이고 테페가 언덕이다. 평원 위에 느닷없이 솟은 구릉이 배꼽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터키 사람들의 배꼽은 제법 높은 모양이다. 사방 어느 곳을 둘러봐도 시야의 끝은 지평선이다. 애당초 신전 같은 것이 자리할 수밖에 없는 지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만 년 넘게 길고 긴 잠에 빠져있던 괴베클리테페가 존재를 드러낸 건 1964년이다. 미국 고고학팀이 터키 남동부의 한 외딴 곳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이 언덕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들은 불쑥 솟아난 언덕이 수만 개의 깨진 돌조각들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발굴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자연적인 지형은 아니지만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 ‘비잔티움 시대의 무덤이 아닐까정도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덕분에 유적은 잠자는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었다. 미국 고고학팀으로는 소위 큰 건을 놓친 셈이었다. 그로부터 30년 뒤 괴베클리테페의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목동이 가축을 몰고 가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흙으로 뒤덮여 있던 낯선 모양의 돌들이 햇빛 속에 드러난 것이었다. 그 소식은 샨르우르파 박물관 큐레이터의 귀에 들어갔다. 박물관 측은 중앙 정부에 연락을 했고, 이스탄불에 있던 독일 고고학자들이 조사차 오게 된다. 1994년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 박사가 책임자가 되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한다. 처음 발굴할 때만 해도 이런 거대한 유물이 묻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장하는 광경을 새긴 듯. 새가 보인다.

지금까지 밖으로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6개의 신전을 발굴했는데, 조사 결과 모두 24개의 신전이 더 묻혀 있다고 한다. 이 거대한 구릉 전부가 신전이었던 셈이다. 석상들 틈에서 빠져나와 언덕을 올려다보니 정점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외로워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고고하다고? 그러니까 그런 그림이다. 끝없는 평원에 배꼽처럼 언덕이 하나 불쑥 돋아있고 그 꼭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는. 나무 주위에는 돌로 담을 만들어 놨다. 가까이 가 봐도 언뜻 무슨 나무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뽕나무 같기는 한데 잎이 작아서 확신하기는 어렵고, 우리 땅에도 작은 잎 뽕나무가 있으니까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그렇다. 나무 이름을 물어보니 그곳에서는 드드안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름이야 그렇다 치고,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무척 경건한 풍경이다. 나무 옆에 서니 저 아래 낮은 구릉들과 세상 만물이 모두 한꺼번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 같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이 드드안 나무가 서 있는 장소는 유적이 발견되기 전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신성시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슬람교도들도 이 자리에서 희생제를 치루는 등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져 왔다. 인류가 탄생한 때부터 대대로 성스러웠던 이곳. 대체 어떤 이야기들이 묻혀 있는 것일까. 조사 결과 유적이 땅 속에 묻히게 된 건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신전의 흔적은 두 개의 시대로 나눠진다. 1차는 BC 9500~8500. 그리고 약간의 공백기를 가졌다가 BC 8500~8000년에 다시 인공의 흔적이 나타난다. 문제는 그 뒤다. BC 8000년 뒤에는 사람의 손길이 완전히 사라진다.

 

저 곳 어디쯤에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곳을 인위적으로 덮어버리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부분 역시 미스터리다. 수백 년에 걸쳐 만들었으며 1,000년 이상 성스러운 곳으로 삼았던 곳을 왜 떠났을까. 그리고 왜 그냥 떠나지 않고 흙으로 덮었을까? 이 광대한 지역을 덮는 데만 해도 수십 년이 걸렸을 텐데. 느닷없이 또 추리소설을 써야말 할 것 같은 예감에 시달린다. 이 대답은 상상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보다 먼저 고민한 사람이 있었다. 가장 그럴 듯한 상상을 한 사람은 톰 녹스(Tom Knox)라는 기자 출신의 소설가였다. 그는 어느 날 TV에서 괴베클리테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뭔가 을 받은 그는 현장으로 달려가 기획기사를 썼고 2년 뒤에는 <창세기 비밀(THE GENESIS SECRET)>이라는 팩션 소설을 내놓았다. 소설을 홍보하자는 건 아니고 그의 상상력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내용을 좀 빌려서 이야기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톰 녹스는 브라이트너 박사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단서를 풀어놓는다.

“1만 년에서 12000년 전에 이 지역은 지금처럼 메마른 땅이 아니었다오. 오히려 아름답고 목가적인 땅이었지. 사냥감들이 초원을 뛰놀고 나무에는 야생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강에는 물고기가 가득했을 거요. 조각상에 지금 이곳에 살지 않는 동물들이 조각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

지금은 황무지처럼 보이는 저 넓은 땅이 인류가 잃어버렸던 낙원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 들판 어디에 이곳을 신전으로 둔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이 지역이 풍요로운 땅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상상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든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이 가까운 데다 석상에 새겨진 동물들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니까.

 

언덕 맨 꼭대기에 있는 '드드안 나무'

그렇다면 더욱 궁금해진다. 그들은 사냥감이 코앞에서 뛰놀고 열매가 입 안으로 뚝뚝 떨어지고 물 반 고기 반이었던 이 땅을 왜 떠났을까. 답 쪽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소설 속 브라이트 박사의 생각을 좀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따는 성서 속의 에덴동산과는 조금 다른 에덴동산이다. 그는 에덴동산 이야기가 인간의 수렵채집 시대를 묘사한다고 전제한다. 인류의 조상이 낙원에 사는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로 형상화 됐다는 것이다. 그들의 풍요로웠던 삶은 채집수렵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훨씬 더 많은 노동과 시간을 투자해야하는 삶으로 전락했다. 그 시기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시기로 규정한 것이다. 소설까지 인용하면서 이 괴베클리테페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받은 충격이 크다는 것이다. 12,000년 전의 신전이라니. 우리가 단군 이래 반만년 어쩌고 하는 것도 신화쯤으로 치부하는데, 그보다 7,000년이나 앞선 시대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유물이 지금 내 앞에 햇볕을 받고 서 있다니.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자. 그들은 왜 이 낙원을 버리고 떠났을까. 역시 채집수렵과 농경문화 어쩌고 하면서 얼렁뚱땅 덮어버려야 할까. 고고학적 지식이라고는 쌀 한 톨만치도 갖지 못한 나로서는 또 다시 소설가의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톰 녹스는 외래인의 유입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떠난 이유로 제시한다. 기원 전 1만 년경, 한 인종이 북쪽에서 살기 좋은 삼각주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들은 이곳에 사는 왜소한 사람들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세고 난폭했다.

 

어딘지 모르게 성스러운 풍경이다.

또 이곳에 살던 사람들보다 훨씬 똑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현지 종족과 어울려 살면서 건축, 조각, 종교 같은 첨단 문물을 가르친다. 따라서 괴베클리테페 역시 외래인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괴베클리테페는 이들 왜소한 수렵채집인들에게는 일종의 낙원이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신이 인간과 함께 거니는 에덴동산인 거죠. 그러나 어느 날,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량자원이 줄어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 결과 북쪽에서 온 거인족은 열등한 현지 종족을 노예로 부려 쿠르드 평원의 야생 곡식을 거두게 했습니다. 힘든 노동에 시달리는 농부 신세로 전락하게 된 거죠. 왜 갑작스럽게 농경문화가 시작되는지 그 수수께끼의 실체가 바로 이겁니다.”

그게 바로 인간 타락 신화의 정체라는 말이군요. 에덴동산에 추방당한 진짜 이유 말입니다.”

소설 속 대화를 빌려온 것이다. ,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겐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린다. 게다가 소설에 의하면 북부인들은 왜소한 수렵채집인 여자들을 성적으로 타락시킨다. 여자들은 새로운 종족과의 성교를 통해 새로운 성에 눈을 뜨게 된다. 이종교배에 의한 후손들도 태어난다. , 이젠 땅에 묻힌 괴베클리테페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달리다 못한 수렵채인민들은 북부의 침략자들에게 맞서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압도적인 숫자에 의지에 북부인들을 모조리 살육하는데 성공한다.

 

괴베클리테페는 엄청난 노력 끝에 땅에 묻히게 됩니다. 거인족과 수렵채집인 사이의 이종 교배라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우기 위해, 악의 씨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말이죠. 수렵채집인들은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거대한 사원을 의도적으로 땅속에 매장했습니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쓰라린 낙원 추방의 기억을, 악과 함께 참혹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개와 교대로 바위를 지키는 청년.

소설을 가지고 맞다, 그르다를 판정하려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겐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그렇다고 눈앞의 유적을 보면서 기껏 소설이나 인용하느냐고 타박해도 부끄럽지는 않다. 나 자신이 상당부분 소설 속 상상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훗날 이 가설을 뒤집을 수 있는 학술적 결과가 나오면 앞장서서 전하면 되겠지. 나는 지금 에덴동산에 서 있다. 사과나무가 서 있고 뱀이 이브를 유혹하는 장면은 없지만, 드드안 나무가 있고 뱀의 조각이 새겨진 거석들이 있는 그 에덴동산. 낙원을 잃어버린 인류의 후손으로 이 언덕에 서 있는 것이다. 시간이 제법 흘렀는지 햇살이 사선으로 비껴들고 황막한 평원에서 올라온 바람이 슬며시 옷자락을 들춘다. 이제 떠나야할 시간이다. 나오는 길에 보니 들어갈 때 개가 있던 그 자리에 한 청년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잠들은 걸까? 민가가 무척 멀리 떨어진 곳인데. 개가 사람으로 바뀌었을 리는 없고 저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이곳을 교대로 지키고 있는 것일까.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