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Notice

2009. 12. 21. 08:31 사라져가는 것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성장기 내내 혹처럼 떨어질 줄 모르던  가난이란 괴물은, 기어이 대학까지 따라붙고 말았다. 등록금 마련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나면 변변한 옷 한번 마련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던 중 어찌어찌 해서 헌 옷 한 벌을 얻게 되었는데, 바로 검게 염색한 군복과 미제 야전점퍼였다. 그것들이 생긴 뒤로는 옷 걱정은 자연히 사라졌다. 봄‧여름에는 군복만 입으면 됐고 겨울에는 야전점퍼를 걸치면 그런대로 견딜 만 했다. 여름에야말로 팔을 둥둥 걷어 부치면 그만이었고…. 감자 먹은 때를 벗지 못한 촌놈인지라 어느 군부대서인가 흘러나온 물건이려니 했는데, 훗날 알고 보니 양키시장 출신의 옷들이었다. 염색을 한 이유는 군인들이 입는 국방색 옷을 못 입게 단속했기 때문이었다. 양키는 몰라도 양키시장이란 말은 그 때 처음 들었다. 양키(Yankee)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과는 별도로, 헐벗은 청춘의 한 때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는 것으로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이미 ‘구제품’ 시절은 지나간 뒤였지만, 독특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은 멋을 위해 양키시장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요즘의 ‘빈티지룩’이나 ‘밀리터리룩’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브미 껌, 기브미 쪼꼬렛의 시절이 저만치 지난 다음의 이야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키라는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뉴잉글랜드 지방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남북전쟁 당시에는 남부인이 북군 병사에 대한 모멸적 칭호로 썼으며, 그것이 다시 널리 미국인 일반을 가리키는 속칭이 되었다.’고 나와 있다. 즉, 조롱하거나 얕잡아보는 의미로 쓰인 셈이다. 요즘은 어떤가 싶어 위키백과사전을 찾아봤더니 ‘미국 안에서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엄격하고 검소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에 쓰인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와 동아시아에서는 반미 감정을 담은 욕으로 쓰인다.’는 설명도 덧붙여 있어서 여전히 썩 아름답지 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양키라는 단어는 ‘쪼꼬렛’만도 못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반미감정이 고조돼 있던 1980년대에는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 시위구호가 되어 길바닥에 굴러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양키시장은 양키와 좀 달랐다. ‘귀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은근히 사랑을 받기도 했다. 양키시장은 어느 특정한 지역의 시장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파는 시장 자체를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동두천 양키시장, 군산 양키시장, 동인천 양키시장 등으로 불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키시장 하면 동인천 양키시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인천시 동구 송림동의 중앙시장 한켠에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직접 찾아간 건 게으른 가을 햇살이 길게 누운 어느 오후였다. 1호선 전철을 이용하면 동인천역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중앙시장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양키시장을 찾는 건 그리 간단치 않다. 간판이 걸린 것도 아니고(동두천 양키시장엔 간판이 있다) 얼핏 봐서는 옷이나 파는 평범한 시장골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기어이 행인에게 묻고 말았다. 바로 앞에 있는 걸 묻느냐는 듯 턱짓으로 골목 하나를 가리킨다. 정말 코앞에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라기보다 침침한 골목이었다. 요즘은 어지간한 재래시장(전통시장이라 부른다)도 개량의 바람을 타고 환하게 불을 밝히는데, 양키시장은 세월의 이끼를 껴입기라도 한 듯 어스름 조명 아래 늙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양키시장 탐험을 하기 전에 먼저 만난 것은 벽에 붙은 ‘호소문’ 한 장이었다. ‘인천시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이 호소문에는 ‘중앙시장이 전통 명물시장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동인천 북광장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왠지 철시분위기더라니, 결국 이곳도 사라지는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키시장은 미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미군부대에서 빠져나오거나 인천항으로 드나드는 내외국인들이 몰래 들여온 물건이 거래 대상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지급되던 군용물품은 물론이고 각종 소비재까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여자들이 바르는 분이나 로션‧커피 같은 것에서부터 땅콩‧캐러멜 같은 군것질거리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는 곳’이 양키시장이었다. 하지만 불법으로 빠져나온 그런 물건들을 늘 버젓하게 내놓고 팔지는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단속이라도 나오면 미제물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범한 시장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도깨비 시장’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후 입을 게 풍족하지 않던 시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값싼 군복을 사서 검정색으로 물들여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 군복뿐 아니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화의 목 부분을 잘라 구두처럼 신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물자부족 때문이 아니라, 멋을 내기 위해 찾아다니는 곳으로 바뀌기도 했다. ‘미제’라면 사족을 못 쓰던 사람들도 양키시장을 기웃거렸다. 덕분에 양키시장이 잘 나갈 때는 1백여 개의 노점이 있을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선 수선골목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수선골목은 시장에서 옷을 산 사람들이 줄이거나 물들이기 위해 들르던 곳이었다. 양키시장의 부침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 셈이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골목은 내일이라도 철거될 것처럼 썰렁했다. 서울사, 킹콩수선, 보해사… 세월을 껴입은 간판들과, 마크‧명찰‧오바로크 같은 단어들은 여전히 남아 빈 골목을 배회했다. 시간에 떠밀려 등을 보인 것들이 가지는 전형적인 쓸쓸함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무엇이 이 골목에서 생기를 빼앗아 갔을까. 양키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고 한다. 1988년 이후 농·수·광산물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공산품 수입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곳곳에 좋은 상품이 넘쳐나는 것은 물론, 굳이 양키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원하는 물품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숨어서 피우던 양담배도 버젓이 길에서 피울 수 있는 시절이 되었으니…. 수선골목을 나와 본격적인 시장 탐색에 들어갔다.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종 사탕, 과자, 초콜릿 등을 파는 가게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한때는 아무 곳에서나 구경하기 힘든 귀한 물건들이었으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몇 가게는 여전히 미군부대에서 나왔음직한 전투복이나 군화 등을 팔고 있었다. 품목도 가지각색이었다. 야전삽, 반합, 수통, 침대 등 야전에서 쓰이는 물건들은 물론이고 군용 모자, 요대, 버클까지…. 물론 한국군용으로 보이는 장비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가게는 양키시장이라는 이름과 관계없어 보이는 옷을 팔고 있었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꽤 여럿 보였다. 가게를 지키는 분들은 노인이 많았다. 양키시장과 함께 세월의 언덕을 허덕이며 넘어온 분들이리라.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잖아도 서러울 분들에게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모처럼 사람 그림자를 봤는데, 물건을 사기는커녕 간신이 눌러두었던 아픔이나 끄집어내놓고 간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사진을 찍는 것조차 죄스러워 몇 커트 누르다 돌아 나오고 말았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양키시장이 다시 환하게 빛날 일은 없을 것이다. 서울의 골목들이 거대빌딩의 탐식으로 사라져가듯, 얼마 뒤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좋은 일로 생겨났든 아픈 역사의 산물이든, 시대에 버림받은 것들의 뒷모습은 서럽다. 양키시장 역시 시대가 낳았지만, 시대의 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골목에 앉아있는 노인들은 아직도 추억을 팔고 싶은데…. 먼지 앉은 저 군화들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양키시장을 방문한 것은 2009년 10월이었습니다. 12월 현재 중앙시장은 헐렸고 양키시장은 철거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