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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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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하산케이프와 티그리스 강

어둑어둑한 언덕을 내려오는데, 장 선생이 들렀다 갈 곳이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전에 하산케이프에 왔다가 인연을 맺은 분들이 있는데 잠깐 인사나 하고 가겠단다. 장 선생은 이 땅에 대한 애정과 학문적 식견이 깊은 분이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장 선생이 금방 나오더니 촬영팀의 옷소매를 끈다. 이 집에서 일행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올 것을 어떻게 알고 저녁식사를 준비했지? 해답은 무슬림 특유의 초대정신에 있겠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금방 가봐야 한다고 하니까, 그럼 일행을 모두 데리고 오면 될 게 아니냐고 윽박질렀을것이다. 안 봐도 상황이 훤하다. 사실 저녁 무렵 별 생각 없이 남의 집을 방문한 게 문제였다. 우리가 들어가면 이 집 식구들은 준비했던 저녁식사를 몽땅 내줄 게 뻔하다. 몇 번 사양해 보지만 사양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식사 때 들른 나그네를 그냥 보낼 사람들이 아니니까.

 

이방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도 집 주인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여자들은 주방으로 들어가고 남자들은 아이들까지 나서서 손님맞이를 한다. 상은 금방 차려진다. 보자기가 펴지고 빵과 볶음밥이 나오고 꿀이 나오고 아이란이 한 순배 돌고. 잠시 뒤에는 화술리에라고 부르는 콩죽과 김이 푸짐하게 오르는 닭(백숙)도 나온다. 짐작대로 막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말이 그렇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식사 직전에 찾아온 손님에게 자신들의 밥을 다 내어주고 다시 준비하는 상황. 그렇다고 장 선생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 손님맞이를 지휘하는 이는 이 집의 가장인 노인이다. 한쪽에 앉아서 연신 맛있게 먹으라고 권한다. 민망한 마음에 함께 드시자고 권해도 소용없다. 음식은 무척 맛있다. 시중에서 파는 음식을 아직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나도 과식한다 싶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 옆에서 지키고 있다가 그릇을 비우면 자꾸 더 덜어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더 먹어라더 먹어라그릇을 안 비우면 맛없어서 그러는 줄 알까봐 열심히 비우게 되고 비우면 더 덜어주고. 이런 상황을 일러 진퇴양난이라고 했던가.

 

동굴집에도 불이 켜지고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벌써 차이를 준비하고 있다. 포크를 내려놓자 차이 잔이 가득 채워진다. 차 역시 비우는 대로 따라주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에 신경을 써야한다. 노인의 아들 둘이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은 차이를 따르고 한 사람은 설탕을 넣어준다. 난로 위에서는 주전자가 계속 김을 품어내고 있다. 차이를 끓이는 주전자의 이름은 차이단리크.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난로 위에 있다. 이 주전자는 이층 구조로 아랫부분이 조금 더 큰데 여기에 끓는 물을 담는다. 위쪽 주전자는 뎀리크라고 하는데 홍차를 듬뿍 넣고 물을 조금만 담는다. 난로 위에 얹어놓으면 아래쪽 주전자에서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가 위로 올라가 차의 온도를 유지시킨다. 차를 마시는데 이 집 어른이 베이셀에게 뭔가 훈계를 하는 눈치다. 베이셀은 무척 당황한 것 같다. 장 선생의 옆구리를 쿡 질렀더니 혼나고 있는 거란다. 쿠르드족인 어른이 역시 쿠르드족인 베이셀에게 자기들 말로 뭔가 물어봤는데 못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훈계를 요약하면 왜 우리말이 있는데 투르크 말만 하느냐라는 것이다. 이들도 세대 간의 단절이 심하구나. 쿠르드족은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지만 방언이 심한데다 젊은이들이 자꾸 터키화돼가는 바람에 언어의 맥이 끊기고 있다고 한다.

 

TV에서는 어제 안타키아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소식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13명이 사망했는데 4명은 터키사람, 9명은 시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터키 땅에서 벌어진 폭탄테러에 시리아 사람이 많이 죽은 것을 보면, 내전을 피해 터키로 피난 온 사람들이 타깃이었던 것 같다. 이런 잔혹성과 증오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대체 어쩌자고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는 걸까.

 

새벽의 하산케이프는 안개가 점령했다.

노인에게는 33녀의 자식들이 있는데 시집간 딸만 빼고 한집에 모여 산다. 노인은 평생 마을의 이발사였다. 지금은 셋째 아들이 이어받아 함께 일을 한다고 한다. 이곳 역시 시골동네 이발소는 마을 사랑방 역할도 한다. 큰 아들은 이혼을 했다고 장 선생이 귀띔한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이혼에도 남녀차별이 있다. 남자들은 이혼하기가 식은 죽 먹기만큼 쉽다. 증인을 놓고 이혼한다, 이혼한다, 이혼한다세 번만 말하면 된다. 굳이 의무가 있다면 아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재산을 돌려주는 것뿐. 물론 여성들은 선언만으로 이혼을 할 수 없다. 법정에 서야하고 이혼이 불가피한 이유를 설명할 두 명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1934년에 여성 참정권이 부여됐고 여성 변호사와 국회의원도 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법보다 종교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배가 터질 정도로 밥과 차이를 마셨다. 무슬림 가정에, 그것도 보수적 쿠르드족의 가정에 느닷없이 들어가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함께 TV를 보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손님접대가 이렇게 지극정성인 것은 순박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하는 것이 이슬람교도의 의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슬림에게 환대란 손님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손님 접대를 제대로 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믿음까지 있다.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온 가족이 문밖까지 나와 전송한다. 대체 우리는 이들에게 무엇일까. 바트만으로 돌아가는 길 초승달이 내내 따라오며 웃는다.

 

카메라감독의 고독

다음 날 새벽. 네 시부터 서둘러 다시 하산케이프로 간다. 양을 몰고 초원으로 가는 목동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초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컴컴할 때 길을 나선다. 티그리스 강을 따라 하산케이이프로 가는 길은 온통 안개들의 세상이다. 안개군단은 자신들의 제국에 느닷없이 나타난 헤드라이트 불빛에 움찔움찔 물러선다. 하산케이프도 온통 안개가 점령했다. 인적이 없는 작은 도시에 안개가 들개 떼처럼 우우 몰려다닌다. 세상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지금의 이 안개와 어둠도 언젠가는 물에 잠길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안개속이라고 해도 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닭들이 새벽을 알리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 그들은 합창대회라도 나온 듯 열심히 고요를 밀어낸다.

 

어제 저녁에 내려왔던 언덕길을 다시 올라간다. 단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색다른 분장이라도 한 듯 조금 낯설다. 어둠 속에서 양과 염소들이 내는 소리가 옹알이처럼 들려온다. 저들은 이미 깨어 있었던 걸까. 어둠은 조금씩 걷히는데 안개는 갈수록 짙어진다. 티그리스 강이 강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토해냈을 안개. 안개 속에 긴 세월의 냄새라도 배어있나 싶어 혼자 킁킁거려본다. 촬영팀이 준비를 하는 동안 혼자 길을 올라가다가 느닷없는 위기에 부딪힌다. 컴컴한 어둠, 아니 안개 저쪽에서 들리는 으르렁거리는 소리. 모든 신경을 집중한 공격 직전의 경고가 틀림없다. 순간 전신을 감싸는 공포에 온몸의 털이 송곳처럼 떨치고 일어난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캉갈이다. 어제 저녁부터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경계하던 녀석들 중 하나일 것이다. 캉갈은 터키의 나라개(國犬)이자 터키사람들의 자랑이다. 원산지는 터키 중부 캉갈(Kangal)이라는 조그만 읍. 주로 양치기개로 쓰이지만 힘이 무척 좋아서 트랙터 한 대를 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늑대와 11로 싸우면 이길 확률이 50%이상이며 두 마리가 협공하면 식은 죽 먹기다. 그렇게 엄청난 힘과 용맹을 가졌지만 주인에게는 순한 양이나 다름없다. 그에 반해서 침입자에게는 단호한 응징을 가한다.

 

초원으로 가는 길, 염소들이 앞장 선다.

그런 녀석과 안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것이다. 도망치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저 개에게 나는 지금 침입자일 뿐이다. 촬영팀과는 떨어져 있고(가까이 있은들 무슨 도움이 되랴) 주변에는 무기로 삼을만한 것도 없다. , 이게 바로 원초적 공포라는 거구나. 입에서는 신음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그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들여다보는 자아라니. 안개 저쪽의 절대자에게 안개 이쪽의 생명은 먹이라는 이름과 다르지 않다. 개와 사람 간에 설정된 상식의 관계는 안개 하나로 철저하게 무너져 있는 것이다. 준비된 폭력 앞에서 나는 절대 무기력한 존재일 뿐. 얼마나 허세 속에 살았던가. 그런 자각들이 빛의 속도로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또 누군가가 순간의 반전을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양치기 청년이 츼츼츼! 소리와 함께 나타난다. 개가 고개를 떨어트린다. 또 한 번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자리에 주저앉기라도 할 듯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다시 허세의 나로 돌아오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충격의 여운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여행자,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진짜 를 만나려 떠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도 셔터를 누르는 미친 존재일지도.

 

먹이를 찾아 나서는 장엄한 행렬

조금 전의 죽음 같았던 공포는 오로지 나를 겨냥해 준비된 상황극이었을 뿐이다. 충격의 잔해도 온전히 내 몫이다. 목동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아침 맞을 준비를 한다. 안개가 짙어질수록 닭들의 울음소리는 그악스럽게 높아진다. 보이지 않을수록 소리를 높여 존재를 알리는구나. 안개 속에 서 있으려니 이상한 안도감이 전신을 감싼다. 어쩌면 익명의 자유 속에 풍덩 빠져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안도인지도 모른다. 안개 속에서 경계는 물론 분별마저 잃고 싶다. 강이 이렇게 엄청난 안개를 토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사물은 경계를 지워버렸다. 이거니 저거니 가늠하던 눈은 더 이상 쓸모없어졌고 그나마 열린 귀도 분별을 위해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만 더욱 또렷해졌을 뿐이다. 이곳이 호수로 바뀐 뒤, 안개는 여전히 아우성으로 몸을 일으키겠지만 흐름은 멈출 것이다. 양떼를 몰고 초원으로 향하는 목동도 없을 것이다. 안개 속은 걸어갈 수 있지만 물속을 걸어갈 목동은 없을 테니.

 

 

목동들의 아버지, 노인도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어제 저녁 내내 그렇게 귀찮게 했는데도 반갑게 맞아준다. 아침 6. 양들에게 아침을 먹인 목동들이 츼츼츼 소리와 함께 안개 속으로 어렴풋이 녹아든다. 양이 앞서고 중간에 노새가 걷고(저 노새는 왜 필요한 거지?) 염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캉갈들이 주변을 에워싼 긴 행렬. 안개가 걷힌 산봉우리에서 해가 반짝 얼굴을 내민다. 금세 안개를 밀어낼 듯 기운차다. 하지만 안개의 방어도 만만치는 않다. 이들도 전쟁으로 하루를 지어나가는구나. 한 눈 팔다 행렬을 잊은 듯 어린 양 한 마리가 울며불며 달려온다. 조금 달리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지만 앞에서도 뒤에서도 행렬을 찾지 못한 순간의 당황. 느닷없이 내가 지금 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달려간다고 달려가는데 홀로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는. 아이야.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지금 네가 달려가는 길이 옳고 그름은 한참 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

 

홀로 떨어진 철학자 염소

양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쉬는 시간. 동굴집들의 주변은 느닷없는 적막 속에 잠긴다. 안개도 어느덧 걷혀있다. 저들은 또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고삐 없는 소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풀을 뜯는다. 길 위에 빵떡 같은 똥을 얹어놓아도 뭐라는 사람 하나 없다. 뿔날 자리가 간지러운 어린 녀석들은 지들끼리 머리를 부비며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한다. 참선하는 염소도 있다. 이 녀석은 절대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 초원으로 가는 동료들의 긴 행렬이 출발할 때도 남 보듯 한다. 주인도 포기한지 오래인 것 같다. 가까운 풀밭까지만 데려다 주고 바로 돌아서버린다. ‘특별한녀석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썩은 눈치다. 밤새 배가 고팠으련만 녀석은 풀 따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멀리 두고, 태양과 티그리스 강이 교접해서 낳은, 퍼덕거리는 물비늘만 응시할 뿐이다. 산들바람이 불어도 선정(禪定)에 든 노승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일부러 바짝 다가가 인기척을 내보지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다. 이 염소는 대체 무엇을 참구하는 것일까. 촬영팀이 풍경 스케치를 하는 동안 내 시선은 오로지 염소에 고정돼 있다. 그만 가자는 재촉에 발길을 돌리면서도 눈길은 쉽사리 돌리지 못한다. 저 깊고 깊은 고독에 경의를.염 선생,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이 있거든 바람결에라도 소식 한 줄 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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