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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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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15. 10:12 사라져가는 것들

달고나를 기억하십니까?
떼기나 뽑기, 지역에 따라서는 쪽자 또는 똥까자(똥과자)라고 부르던 그 추억의 군것질거리 말입니다.
하긴 30대 이상이라면 가슴 한쪽에 달고나에 대한 추억 한 자락쯤 묻어놓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전에서 찾아보니 ‘설탕을 녹인 후에 소다(탄산수소나트륨)를 넣어서 만든 즉석 과자’라고 써놓았더군요.
달고나 특유의 ‘맛’은 고려하지 않은 삭막한 풀이지만, 더 이상 설명하는 것도 구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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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한마당은 학교 근처나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놀이터에서 주로 열렸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면 문방구 앞에는 벌써 ‘달고나아저씨’(혹은 아줌마)가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판을 벌려놓고 있었습니다.
그 유혹을 물리치고 가던 길을 내쳐 가기란, 개가 똥을 외면하고 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물그릇 주변으로 모여드는 병아리들처럼, 아이들은 달고나아저씨를 둘러싸게 마련이었습니다.
아저씨는 그때부터 신바람이 나지요.
연탄불이 피워져 있는 화덕, 그리고 그 위에 자리 잡은 국자.
국자에 설탕을 조금 넣고 열을 가하면, 봄볕 맞은 눈처럼 사르르 녹아 액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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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나무젓가락으로 소다를 조금 찍어 넣고 살살 저어주면 설탕반죽이 깜짝 놀랄 만큼 부풀어 오르지요.
그 순간이야말로 감동 그 자체입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희열이 전신을 훑고 지나갑니다.
아이들 입에서는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지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거기가 끝은 아닙니다.
아저씨는 내용물이 굳기 전에 국자를 양철쟁반 위에 툭! 하고 내리쳐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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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들어있던 반죽을 떨어냅니다.
그리고는 누르개로 얼른 눌러 납작하게 만든 뒤, 모양 틀로 눌러 각종 형상을 만들어내지요.
별모양, 태극모양, 열쇠모양에서 꽃모양까지… 별별 모양이 다 등장합니다.

진정한 재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이들에게는 틀로 눌러 만들어 놓은 각종 모양을 깨트리지 않고 뽑아내는 과제가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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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쯤이면 달고나가 딱딱하게 굳어진 뒤지요.
목표를 달성하려면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떼어내야 합니다.
초보자는 엄벙덤벙 하다가 금세 깨트려먹기 마련이지만, ‘선수’들은 신중하게 조금씩 진행을 합니다.
여기에도 요령이란 게 있는데, 바로 도구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뾰족한 핀이나 이쑤시개에 침을 묻혀 살금살금 긁어내면 깨트리지 않고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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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떼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물이나 침 묻히는 건 반칙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떼기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홈을 살살 긁어내는 아이, 콕콕 찍는 아이, 혀끝으로 침을 발라 넣는 아이, 야금야금 이로 물어뜯는 아이, 손톱으로 긁어내는 아이…
물론 결정적으로 성패를 가르는 건 인내지요.
조금 녹았다고 해서 무리하게 떼어내다가는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맙니다.
거의 떼어냈다고 좋아하는데 막판에 똑 부러졌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어느 아이는 침을 묻혀 떨어진 부분을 억지로 붙여놓고 우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달고나아저씨가 그걸 모를 리 없지요.
떼기에 끝까지 성공한 아이에게는 그에 맞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달고나를 하나 더 주기도 했고, 다른 경품을 주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모양일수록 경품의 질은 더욱 높아집니다.
돈으로 주는 ‘도박성’ 게임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실패한 아이는 그냥 뜯어먹으며 집으로 가면 그만이었고요.
그 달콤하고도 쌉쌀한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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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먹는 게 감질나거나 용돈이 충분치 않은 아이들은 ‘달고나 직접 만들어 먹기’에 도전했습니다.
어른들이 집을 비운 날 거사는 시작되지요.
만드는 방법이야 하도 많이 봤으니 걱정할 게 없습니다.
부엌 벽에 걸린 국자를 내리고 찬장에 있는 설탕과 소다만 꺼내면 준비 끝!
만드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불이 너무 세면 안 됩니다.
뭉근한(세지 않은 불기운이 끊이지 않고 꾸준한) 불에 천천히 가열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지요.
더욱 중요한 건 소다를 넣는 과정입니다.
많이 부풀리겠다고 과다하게 넣으면 설탕이 부글부글 끓어 넘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못 먹을 만큼 쓰기도 했지요.
과도한 욕심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마련입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달고나를 다 먹은 다음에 터집니다.
국자 상태를 보면 걱정을 안 될 수가 없지요.
바닥은 시커멓게 타고 설탕이 눌어붙어서 아무리 씻어도 흔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혼날 게 겁나서 숨겨놓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되겠습니까.
엄마가 찾아낸 국자엔 아이가 겪었을 고심의 시간이 그대로 배어 있지요.
어떻게든 흔적을 지워보려고 젓가락으로 긁은 자국과 한 쪽에 새겨진 이빨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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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주변에서 사라졌던 달고나장수를 요즘은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전을 펴놓은 아주머니들을 가끔 볼 수 있으니까요.
먹고사는 게 팍팍해지니 추억상품이 먹히는 것일까요.
그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달고나’를 치면, 도구와 재료를 파는 곳이 우르르 나옵니다.
그걸 사서 집에서 만들어 보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합니다.
음식이라기보다 추억을 만들어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한 조각 입에 넣어보면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아니란 걸 금세 알게 됩니다.
달콤한 음식으로 길들여진 입에 동화되지 못하는 씁쓰레한 맛이 세월의 간극을 가르쳐주지요.
결국 옹기종기 둘러앉아 침을 삼키던 그 시절은 영원히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는 걸 확인할 뿐입니다.

posted by sa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