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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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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1.03 [쿠바 다이어리1] 오래 전 떠나온 별을 찾아가다
2017. 1. 3. 14:04 카테고리 없음

“거기 위험하지 않아?”
“어디? 쿠바? 그럴 리가. 치안이나 안전성으로 보면 여행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
“맞아.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라고 해서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야. 어떤 이데올로기도 위험을 전제로 태어나지는 않아. 문제는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이지.”
“그래도 난 불안해서 못 갈 것 같아.”
“그건 뭐 선택의 문제니까. 따지고 보면 그 나라야 말로 서구 열강의 탐욕으로 고통을 겪은 피해자지. 그래도 그들은 자기들끼리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아.”

 

쿠바로 떠나기 전, 몇몇 사람이 걱정을 했다. 몇몇은 전선으로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실 나는 내가 가는 곳이 조금 위험한 지역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터키와 시리아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인근에 있었고, 파리에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고 싶어 했듯이, 내게는 위험을 갈구하는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바는 여지없이 내 기대를 저버렸다.

 

그곳은 내가 예측한 것보다 더욱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트리니다드에서 한밤중에 가로등도 없는 거리를 헤매고 다녀도 불안하지 않았고, ‘불량기’ 가득한 아이들이 포진하고 있는 아바나의 말레꼰을 산책할 때도 아무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공항의 입국은 이웃집을 드나들듯 쉬웠고 사람들은 아침에 피는 나팔꽃처럼 밝았다.

 

1492년 그 섬에 첫 발을 디딘 콜럼부스가 “인간 세상에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다던가? 정복자이자 파괴자인 콜럼부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그 섬에 늦게 도착한 게 한스러웠다.

 

내가 본 쿠바는 여행자의 천국이었다. 가난한 천국이었다. 다만 문이 너무 넓게 열려 있어서 언젠가 닫히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천국이었다. 세 배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오래된 풍경이 외지인의 발길에 의해 깨질 것 같아 불안한 천국이었다. 그곳은 오래 전에 내가 떠나온 고향별이었다. 아마, 당신의 고향이기도 할 것이다. 세상에는 언어와 사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가보면 안다.

 

 

posted by sa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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