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sagang
블로그에 연재하던 ‘터키 그 속살로 들어가다’가 [이호준의 터키기행2]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이 블로그의 자료들은 출판을 위한 것들이기 때문에 무단 전재,배포,복사를 금합니다. 개인 연락사항은 방명록에 남겨두시거나 sagang@seoul.co.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동굴 안에서 바라본 하산케이프.

 

분명히 사람 흔적은 있는데 대답은 없다. 나는 지금 동굴집 앞에 서 있다. 3,500개가 넘는다는 동굴 중 하나다. 압둘라의 말로는 동굴집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소개(疏開) 시켰다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최소한 한 집에는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 집 앞에 벽돌을 쌓았거나 난로 연통 같은 인공구조물이 있고 심지어는 안에서 불빛까지 새어나온다. 그렇다면 그냥 갈 수 없지. 작은 문이 달려있는 동굴 앞에서 파르돈(실례합니다)”, “메르하바를 열심히 외쳐본다. 하지만 사람이 나오는 기색이 없다. 닭 팔러 장에라도 가셨나? 그냥 포기할 내가 아니지. 장 선생을 옆에 모셔 두고 다시 한 번 목이 터지게 불러본다. 그제야 문이 슬그머니 열리더니 노인 한 분이 나온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장 선생께 인터뷰 허락을 좀 받아달라고 했더니, 이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부터 설레설레 흔든다. 손만 흔드는 게 아니라 아예 등을 돌려 들어가 버린다. 오래된 교각에 깃들어 사는 사람에 이어 두 번째로 인터뷰를 거절당한 것이다. 반에서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산케이프 사람들은 왜 이러지? 곰곰 생각해 보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굴에 산다는 것은 결국 사람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이겠지. 동굴 안으로 번잡한 카메라가 들어오는 게 반가울 턱이 있나. 은자(隱者)는 은자로 살게 놔두는 것도 예의일 터.

 

 

동굴의 문.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발길을 돌리는데 옆 동굴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기척을 했더니 청년 하나가 내려온다.

여기 살아요?”

아니요. 저 아랫동네 사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 동생들 하고 놀러왔어요

전에 이 동굴에 살았어요?”

그건 아니고요. 모두 빈집이니까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놀아요. 이 안에 사람이 키우던 비둘기들이 있어서 재미있거든요

“(너 혹시 애들 데리고 본드 하러 온건 아니지?) 저기 사는 할아버지 알아요?”

그럼요. 원래 저 집에서 사냥하며 살다가 아랫동네에서 가족들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다시 혼자 살아요왜요?”

, 이곳엔 일거리가 없어서 가족들이 전부 아다나로 갔거든요. 할아버지는 죽어도 여기서 살겠다고.”

결국 댐이 만들어놓은 이산가족이구나. 마을이 사라진다니까 일거리는 자꾸 줄어들고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낚시도 하고 사냥도 하고 가끔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도 떤단다. 그만하면 그렇게 고립된 생활도 아닌데 인터뷰 좀 해주지.

모두 사람이 살던 동굴이다.

사람의 흔적이 있는 건 그 집(동굴) 뿐만 아니다. 상주하지는 않더라도 들락거리기는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다. 한 동굴에 들어가니 사람 대신 닭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바위를 위쪽으로 뚫어서 계단을 만들어놓은 동굴로 올라가 본다. 사람이 근래까지 살았던 듯 천장에는 그을음이 그대로 있다. 하긴 불과 10여 년 전까지도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방들은 사각형의 형태를 갖추었고 벽에는 빗살무늬의 정 자국이 나 있다. 오랜 옛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동굴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전, 도구도 변변치 않았을 시절에 어떻게 이런 굴들을 뚫었을까. 정 자국을 하나씩 쓰다듬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마치 다락방을 올라가는 것 같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이르자마자 내 입에서는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풍경이라니.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을 파 놓았다.

저 아래로 티크리스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앞으로 하산케이프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까마득히 먼 곳에는 파랗게 빛나는 초원. 저기 어디쯤에 양들이 풀을 뜯고 있겠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바위들. 내가 가진 언어의 빈곤을 절감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느닷없이 옛사람들이 부러워진다. 여기서 이런 풍경을 보고 살았을 테니 무엇이 부족했으랴. 동굴에서 내려와 위쪽으로 올라가다가 드디어 사람을 발견한다. 한 노인이 마대자루를 메고 터벅터벅 올라간다. 노인을 따라 올라가보니 여긴 또 다른 세상이다. 동굴 앞마당이 축사로 바뀌어 있다. 이곳에서 양을 키우는 모양이다. 노인에게 구경을 좀 해도 되느냐니까 흔쾌히 타맘이다. 구경이랄 것도 없다. 지금은 양들이 모두 풀밭으로 간 시간이기 때문이다.

 

 

동굴에서 청년 하나가 나온다. 수염은 무성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아주 앳된 얼굴이다. 노인의 아들이란다. 이들은 원래 이 동굴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정부 정책에 의해 아랫동네로 이사 간 뒤 이곳에서 양을 키운다. 동굴들 중 일부는 양의 우리로, 일부는 창고로 쓴다. 결국 고향집을 양들에게 내준 셈이다. 동굴은 정부 소유기 때문에 축사로 쓰려면 허가를 받아야한다고 한다. 허가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간단하다.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지요

굳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양을 키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양 우리는 냄새도 나고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다른 집들하고 떨어진 곳에 있는 게 좋아요

아버지와 아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들판에 나간 양들이 돌아오기 전에 준비를 마쳐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덕 아래에서 사료를 등에 지고 올라온다. 노인지만 걸음걸이가 꼿꼿하다. 아들은 나귀를 타고 오르내리며 양들에게 먹일 물을 길어온다.

 

티그리스 강과 하산케이프.

그 단조로운 작업을 구경하고 있자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림자 하나가 강변마을을 서서히 덮는다. 석양이 지고 있는 것이다. 건너편 티그리스 강안(江岸)의 동굴집들이 마지막 햇살을 받아 황금빛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장엄한 그림 한 폭이 눈앞에 걸려있는 듯 황홀하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은 건 이 시간마다 보여주는 저 풍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은 또 지금도 쌓고 있다는 댐으로 이어진다. 저 모습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위대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도 괜찮은 것일까. 하산케이프에 며칠만 더 묵으면 화병이 생길 것 같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들판으로 나갔던 양들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목동과 개, 그리고 양과 염소들이 섞여 언덕을 올라온다.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아까부터 누가 양들을 몰고 나갔을까 궁금했는데 눈앞에 그 답이 펼쳐진다. 물을 나르던 청년과 비슷하게 생긴 청년이 목동들 특유의 지팡이를 짚고 걸어 올라온다. 한 눈에 봐도 피를 나눈 형제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에게는 자식이 열 명이나 있단다. 그중에 아들이 여덟이고 딸이 둘인데 아들 중 세 명이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물을 나르던 청년이 막내고 그 위로 두 명은 양을 몰고 날마다 들로 나간다. 이 지역은 기온이 온화해서 겨울에도 양들에게 풀을 먹일 수 있다.

 

저 동굴 안이 양들의 집이다.

도착하자마자 양들은 양대로 염소들은 염소대로 나위어서 우리로 들어가더니 준비된 사료를 먹는다. 평소에 잘 훈련된 듯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능숙하게 찾아들어간다. 양과 염소를 섞어서 키우는 이유가 있단다. 양들 사이에 염소를 풀어놓으면 염소가 뿔로 양들을 치받는단다. 그러면 양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고기가 맛있어진다나?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은 들은 소린데. 메기효과하고 비슷하잖아.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생해진다는데. 사람으로 보면 대단한 발견일지 몰라도 양이 들으면 스트레스 받을 애기다. 왠지 인간의 욕심만 차리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해지기도 하고.

 

 

노인의 일곱째 아들인 메숫은 방송에 관심이 많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사양 한 번 안하고 술술 대답을 잘한다.

아직 젊은데 대처에 나가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런 생각 별로 안 해봤어요. 양을 키우는 게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이고 또 어려서부터 해온 일인데 버리고 갈 수는 없지요

이곳이 좋아요?”

그럼요. 여기서 태어났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산케이프가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배운 게 없어서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자랑스러운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모자 상봉을 하는 양들과 양치기 3형제.

또 하나의 아들이 제법 어두워진 언덕길을 올라오면서 들판으로 나갔던 모든 양들이 돌아왔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기서 키우는 양이 250~400마리 쯤 된다고 한다. 양들이 모두 도착하자 일대 장관이 벌어진다. 어미들이 나간 사이에 동굴에서 기다리던 새끼 양들을 풀어놓으니 이게 웬일. 배고팠던 새끼들이 한꺼번에 어미 양을 찾아 달려가는 광경이 눈물겹다. 저 많은 양들이 어떻게 저렇게 제 어미와 새끼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지. 비밀은 고유한 냄새에 있단다. 그러나 예외 없는 원칙이 어디 있어. 몇 녀석은 제 어미를 못 찾고 매애~ 매애~ 난리가 났다. 이상하게 새끼를 피해 도망가는 어미들도 있다. 목동들은 그런 녀석들을 안고 돌아다니며 어미 찾아주기에 바쁘다. 하지만 이 눈물겨운 상봉은 그리 길지 않다. 이별이 길었던 만큼 만남도 길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젖을 다 먹고 나면 또 다시 이산가족이 된다. 밤에는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재운 뒤 밤새 젖이 불면 아침에 먹이고 다시 초원으로 가는 것이다. 이 계절에는 젖을 새끼에게만 먹이고 봄이 지난 뒤부터 파는 젖을 짠다. 이제는 잠 잘 시간. 동굴마다 양들이 그득그득 들이찬다.

 

엄마, 배고팠어요!!

양들이 잠들었으니 사람도 자러갈 시간이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데 일곱 째 아들이 바위 위에 올라가더니 신발을 벗고 메카 쪽을 향해 절을 한다. 실루엣으로 눈에 들어온 모습이 경건하고 장엄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어찌 거룩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진정 거룩함은 가난한 곳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등 뒤로 어둠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나는 감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다. 가슴에 담을 건 가슴에 담는 게 좋다.

 

posted by sagang